詩 2020 128

낙엽 밟는 소리/배 중진

낙엽 밟는 소리/배 중진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소리 혼자만이 듣기 아까워 뒤에 처진 친구에게 기다렸다가 물어봤다 낙엽 밟는 소리가 좋은지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숨을 할딱이면서도 냄새 구수하고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단다 우리는 또 말없이 걷다가 은행알이 떨어진 곳에 다다라 깨진 달걀처럼 터져버린 은행을 가리키며 친구에게 건드리지 말라고 눈빛으로 말했다 일전에 발로 툭 차는 것을 보고는 경악했기에 삶이 오래전에 시작한 은행을 짧은 역사를 지닌 미국인들은 성격을 파악하지 못해 냄새가 고약하게 나는지 만지면 가려운지 알 턱이 없어 그런 무모한 짓을 했으리라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단풍도 즐기고 벽난로에 나무를 태우는 냄새도 맡으며 운동 삼아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고 있는데 거대한 나무뿌리에 포장된 길..

詩 2020 2020.11.03

무너진 금자탑/배 중진

무너진 금자탑/배 중진 모래알같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만난 우리 그중에서도 밤낮으로 함께 있고 싶은 친구 한순간이 아닌 영원을 꿈꾸는 연인 그 사랑도 같은 마음으로 기쁨을 똑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 둘 사이에 바람이 끼는 것을 꺼렸는데 햇빛조차 어루만지는 것을 싫어했는데 어쩌다 따로따로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는가 무심한 세월이여 무정한 사람이여 무상한 인생이여 무너진 사랑의 금자탑이여 11/08/2015 New York Botanical Garden

詩 2020 2020.11.02

시월은/배 중진

시월은/배 중진 시월은 나에게 어떤 것을 주었고 무엇을 남기고 떠났는가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나처럼 두려움을 남겼고 풀리지 않는 공포를 두고 떠났지 싶습니다 오랫동안 삶에 지친 몸 추스르며 될 수 있으면 대인접촉을 피하고 어떻게 하면 목구멍에 풀칠을 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것을 이어가며 내일의 희미한 빛을 그래도 기원하였지요 예년의 화려한 단풍은 우리네 마음처럼 구름과 안개로 꾸물거리고 툭하면 빗방울 쏟아내더니 음침함만 더해주고 거침없이 꺼꾸러졌더군요 천천히 갔으면 했던 시월이었는데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희망을 품기도 하였으니 세상은 변했고 새로운 일상이 되었으며 참담한 가슴으로 내일을 맞이하지만 고개 너머 산이 기다릴 것 같고 무분별하게 날뛰는 젊은이들 때문에 숨어 지내야만 하..

詩 2020 2020.10.31

가을/배 중진

가을/배 중진 기온이 갑자기 내려갔는데도 고운 잎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않고 간당간당 매달려 있습니다 무섭고 혹독한 비바람에 그렇게 시달렸는데도 일편단심 곁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햇빛도 이별의 슬픔을 아는지라 축복하지 않았기에 쫓아다니면서 열광과 찬탄을 보낼 수는 없었지요 진한 눈물 잔뜩 머금은 아름다운 단풍잎은 떠나는 순간이 짧을수록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알기에 고통의 아픔을 같이 나눠야 가볍다기에 우수수 떨어져 누군가를 위해 밑거름이 되겠지요 10/25/2015 Bear Mountain, New York 10/26/2015 Mohonk Mountain House, New Paltz, New York 고향 생각이 납니다. 까치가 울고 참새가 지저귀는 마을이었지요. 기와집이 있었고 좀 누추하지만 초..

詩 2020 2020.10.27

단풍/배 중진

단풍/배 중진 비가 내리고 하늘이 찌푸리고 마음이 울적할 때도 화려한 단풍이 있었고 고운 색깔이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놀았던 시절이 있었네 잠깐이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으니 좀 더 기다려 때를 기다리자 그때까지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자 채색을 하자 11/04/2018 단풍/배 중진 비가 내리고 하늘이 찌푸리고 마음이 울적할 때도 화려한 단풍이 있었고 고운 색깔이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놀았던 시절이 있었네 잠깐이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으니 좀 더 기다려 때를 기다리자 그때까지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자 채색을 하자 관 악 산2020.10.27 07:26 안녕하세요? 우리에게 뿌..

詩 2020 2020.10.27

가을 까마귀/배 중진

가을 까마귀/배 중진 부지런한 까마귀들이 배가 부르게 아침을 먹고 찾아왔다 안개가 자욱하여 세상모르게 꿀잠을 자는 노인 곁으로 다가와 어서 일어나 같이 놀자고 성화다 기억력이 좋고 언어 구사 능력이 있는 그들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가릴 줄도 안다 혼자 행동하는 것도 알지만 대체로 같이 움직여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줄도 안다 멀리 가서 음식을 조달해오기도 하고 노쇠하여 같이하지 못하는 어미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행동을 반포지효라고도 한다 검다고 다 악한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가 시끄럽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었다 까마귀는 인간이 사는 곳에 가깝게 살려고 한다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푸른 하늘을 까맣게 덮은 까마귀들을 보면서 우리같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를 희망한다 10/26/2018 New York Bo..

詩 2020 2020.10.23

가을은/배 중진

가을은/배 중진 가을은 나뭇잎을 당황케 하여 홍조를 띠게 하기도 하지요 헤아리기 어려운 바람을 난데없이 일으켜 정신 사납게 하기도 합니다 울고 싶은 사람을 시원하게 울어보라고 비까지 같이 내려 주네요 우리네 삶이 쉽지 않듯 세상의 모든 것은 몸살을 앓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가을이 떠나면 모두가 초췌한 모습일 겁니다 New York Botanical Garden 10/25/2016

詩 2020 2020.10.21

무슨 사연일까/배 중진

무슨 사연일까/배 중진 요사이는 남과의 접촉이 두려운 계절 자신 이외는 신체적으로 거리 두는 암울한 시기 밖에서 돌아와 손을 깨끗이 닦아야 하는 불안한 시절 그런데 교정에서 엉킨 남녀가 어렵게 언덕을 올라와 할딱거리며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뿌연 안경을 닦는 순간에 학생들이 다 떠난 초등학교 운동장의 귀퉁이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보였다 늦은 시간이라 검은 물체 그 자체였고 얼굴도 알 수 없었다 세상에 떳떳하게 밝히고 싶은 관계는 아닐 터 둘만이 풀어야 하는 슬픈 사랑이리라 짐작하고 정상 퇴근해서 돌아가야 하는 가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혹여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다투기 무엇해 다소 거리가 있는 밖에서 소중한 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산..

詩 2020 2020.10.21

상사화/배 중진

상사화/배 중진 곱기도 하지 잎을 못 보고 자랐어도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지 그리움을 어느 곳에다 감췄을까 청명하기도 하지 엄니를 알지도 못하면서 청승스러움은 하나 내색도 하지 않고 뜨거운 여름 앞에서 호언장담하는 것 같아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을 모르고 겨울 동안 꼭꼭 숨어 지내며 봄의 생기발랄한 힘찬 몸부림도 알지 못했을 텐데 때가 되어 어찌 기어 나올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매미는 누가 보호해주지 않아도 멋진 사람으로 자라나는 인간이 있다는 것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보통은 아닐 터 모든 삶이 경이롭고 순탄한 인생이 부끄럽구나 10/20/2017 Longwood Gardens, PA *석산 석산화 서 량2020.10.18 23:51 상사화가 서로 생각하는 꽃이라는 의미에서 가끔 제 호기심을 ..

詩 2020 2020.10.17

가을/배 중진

가을/배 중진 산에서 느릿느릿 내려오는 사람을 피해 물가로 가서 물소리를 듣는 척했다 바쁘게 재잘거리며 올라가는 학생들을 위해 못 본 채 돌아서서 딴 곳을 응시하여야만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도처에 창궐하여 인간을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였어도 당사자가 아니라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다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 하길 수십 차례 건강을 위해서 그럴 값어치가 있는 것인가 좁은 공간에서의 평범한 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여 뛰쳐나온 것일까 산천은 점점 채색되어 아름다워지고 공기는 혼자 마시기엔 너무도 청결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게 한다 언제나 사소한 것들이 그저 평범한 것이라 여길 수 있으려나 목소리를 높여 외쳐보아도 들려오는 메아리는 공허하기만 하다 단풍이 우수..

詩 2020 202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