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4 9

Snowdrop/배 중진

Snowdrop/배 중진 바닷바람이 몹시 맵다 경치는 좋아도 찾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반바지 차림으로 날뛰지만 갈매기마저 자취를 감췄다 서둘러 운동을 마치고 담장을 막 돌아가는데 수북하게 자라난 스노드롭이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영감을 나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적응력이 뛰어나다 따스한 기운이 감돌자 잠에서 깨어났다 높게 자랄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고 동료와 합심하는 능력이 아름답다 흰 눈이 쌓이면 거기에 조화를 맞추고 질퍽한 땅이면 보는 이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자만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모습에 절로 찬탄하고 남들이 기승을 부릴 때 아주 조용하게 사라진다 희귀함에 매료되고 강풍 앞에 오두방정을 떨어도 되련만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다 설령 교만하여도 질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詩 2024 2024.02.09

운수 사나운 날/배 중진

운수 사나운 날/배 중진 가벼운 걸음으로 집을 나섰고 호의를 베푼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선심을 썼는데 난데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장 투석을 하러 갔는데 누군가 심장을 찔러 버렸다 잘하려고 했는데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멎었다 죽었다 정말 난감했다 황당했다 견인차를 불러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찌 전개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그들의 주차장에서 깜깜하고도 혹독한 밤을 지새워야 한다 자동차가 없으니 가까운 곳도 멀게만 느껴지고 발로만 움직일 수 없는 거리가 되었다 심장을 쏜 난쟁이는 책임을 회피하느라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단순히 바꾸러 갔는데 큰 사고로 발전하여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아주 늦은 시간에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12/6/2023 Brandywi..

詩 2024 2024.01.26

아전인수/배 중진

아전인수/배 중진 인물 좋은 한량이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마당 옆에 있었고 물소리에 맞춰 한시를 읊었으며 복숭아나무를 심어 꿈을 꾸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처가 버젓이 있었고 첩이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음을 싸움을 통해 알았으며 나와 비슷한 잘생긴 아이가 뭣도 모르고 혼자 돌아다녔다 형들과 나이 차가 있었고 막내아들이라 금지옥엽인 양 애지중지 키우며 남의 넓은 집을 인수하여 생활이 넉넉한 모습이었고 재롱떠는 것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처는 외로움을 술로 달래고 있었고 첩은 조용하게 내조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청년이 된 아들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폐병으로 일찍 세상을 하직했다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행동했던 분이신데 그런 처참한 꼴을 당했던 것이다 애처롭게 살려달라는 단말마의 ..

詩 2024 2024.01.24

용/배 중진

용/배 중진 계곡을 타고 쏟아지는 물을 바라보며 자란 소년 가진 것은 없지만 하늘이 가까이 있어 위안이 되었던 곳 옹달샘이 있어 아낙네가 몰려왔고 바위샘이 있어 바가지로 물을 긷던 곳 미꾸라지는 아니었지만 워낙 가난하여 홀로 놀기를 좋아하던 시절 기타를 배우고 바이올린을 켜던 사람 또래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것을 무척 부러워했으리라 바둑도 두면서 소일하고 술 한잔 나누기도 하면서 늦은 밤을 여럿이 보내기도 했는데 느닷없이 잠결에 들려주는 이야기 건선이 있어 목수인 아버지와 공동묘지에 가서 이름 모를 시체를 파내어 뼈를 몇 개 추려서 참기름을 넣고 곱게 빻아 피부에 발랐단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저런 사람이 같은 동네에 사는 인간이라니 도무지 현실을 받..

詩 2024 2024.01.16

탁아소/배 중진

탁아소/배 중진 어린아이들이 꿈을 꾸는 곳 사랑하는 부모와 이별하고 잠시 쉬는 곳 생면부지의 또래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것을 배우는 곳 종일 부모님을 기다리는 곳 우체국에 가다가 우연히 창가의 한 아이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인간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누군가 빨리 와서 데려가길 학수고대하는 인상이다 다른 아이들은 세상모르게 벌건 대낮에도 쌔근거리는데 무슨 걱정이 있는 것일까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은 아닐까 잠자다가 악몽에 시달려 일어나 울고 있던 것은 아닐까 먹고살기 위하여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울며 매달리는 철부지 아이를 맡기는 심정 일하는 체하지만, 마음은 온통 아이에게 가 있지 싶어 안타깝다 10/23/2015 New York City

詩 2024 2024.01.16

흑조/배 중진

흑조/배 중진 산부인과 여의사에게는 딸이 있었고 역시 의사였던 남편은 젊어서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여자 친구가 생겼고 삼각관계에서 탈출하여 동거하기 시작했다 연인은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남성 의사의 정자를 이용하여 역시 의사인 전동거인과 동시에 임신하게 되었단 말이지 불쌍한 아이들은 같은 집에서 오누이로 잘 자랐고 어머니는 다르지만 이모라고 부르면서 성장하였다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한 삶을 살았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애정행각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드넓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느 날 집 주소가 다른 엽서를 받아 들었다 이혼하여 혼자 산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독립된 생활을 즐기고 있고 가끔 왕래도 하지만 전과 같이 행복한 순간은 절대 아니란다 사랑도 때가 있..

詩 2024 2024.01.15

작은 영웅/배 중진

작은 영웅/배 중진 경상도 사나이가 자갈이 많은 언덕에서 놀다가 군에 입대하였다 영도다리 끄덕거리듯 껄렁거리며 사방을 둘러보니 오메 징한 것 전라도 사람이 허벌나게 많았고 밤마다 원수지간이나 된 양 잠도 못 자게 갈궜다 이를 악물었고 복수의 칼날만 밤새도록 갈다가 직업군인이 되겠다고 지원했고 특수교육을 받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돌아왔다 상전벽해가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앙갚음으로 몇 배 더 잔학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인생 역전이 되는듯했으나 세월도 또한 흘러 그들은 전역을 해버렸다 닭 쫓던 개 먼 산 쳐다보는 신세가 되어 허탈함이 엄습하더니 방향 잃은 난파선처럼 갈팡질팡하다가 나쁜 길로 들어섰다 참았어야만 했다 봄이 왔건만 자갈치 시장엔 갈매기만 슬피 우네

詩 2024 2024.01.12

신세타령/배 중진

신세타령/배 중진 박력 넘치는 물소리 흰 눈이 좋아 재잘거리는 새소리 뭔가를 보고 싶어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 희망찬 세계를 갈망하는 심장박동 소리 산은 모든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인간은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감행하는 순간 울퉁불퉁 눈길은 얼었고 무릎에 전해지는 충격 또한 엄청났다 짧은 길이라면 짧고 감히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는 분들에게는 그림 속의 떡 젊어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늘그막엔 아주 가벼운 흰 눈마저 길을 막는구나 밝은 태양이 깊은 계곡을 비춰줬으면 싶으나 뜻은 하늘에 전해지지 않고 무심한 먹구름만 빈둥거리네 동동거리다 발걸음을 돌리면서 하늘만 두고두고 원망하네 불현듯 생각나는 어느 어르신의 음성 20년 전에 올랐던 명승고적을 찾아와서는 산이 더 높아졌다고 가쁜 숨을 내쉰다 젊은..

詩 2024 2024.01.10

청룡의 해/배 중진

청룡의 해/배 중진 지난해 마친 자리에서 선 하나 그어 놓고 또 시작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곳이다 심호흡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누구와 경쟁하기보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이테와 같은 인생 일기장과 같은 어록 들춰보면 살짝 보이지만 방심하면 전혀 흔적 없는 삶의 연속 뿌리가 있어 생명수를 얻고 무성한 잎이 있어 가쁜 숨도 쉰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숲을 이룬다 전체를 위해서 자제를 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아름답게 꾸밀 의지를 보이자

詩 2024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