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배 중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는 새봄 연로하신 할아버지 젊음을 가꾸신다 작은 터에 몇 가지 꽃을 일찍 심어 냉혹한 겨울엔 아무도 모른다 이른 봄 회심의 미소를 지으시며 물끄러미 담배를 꼬나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준다 걷지도 않으시고 문밖에 쭈그리고 앉은 모습이 항상 떠오른다 낙엽이 흩어지며 그동안 자란 국화가 화려한 꽃을 피웠다 꽃 위로 떨어진 갈잎이 무성하지만 방긋 웃는 모습이다 어둠이 내리깔리고 새들도 사라진 저녁 발소리 죽여가며 산책하다가 몇 송이 국화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하지만 어르신은 보이지 않는다 담배 냄새도 늦은 가을 하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