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 7

단풍 구경/배 중진

단풍 구경/배 중진 가장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라 벼르고 별러 단풍 구경을 왔는데 유명한 곳은 뭉게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며 썰렁한 기운이고 매우 쌀쌀했으며 손이 시려 등산하고픈 마음이 전혀 내키지 않는다 멀리서부터 달려오면서 호수의 면이 거울같이 잔잔하길 기대했으나 물결은 촐랑거려 정신까지 혼란스러웠으며 화려한 단풍을 구경하려고 입장료가 비싸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호수를 찾았는데 올해는 알록달록하지도 않고 동네에서 보았던 침침한 단풍과 별 차이가 없어 얼굴까지 하얗게 질렸다 그나마 큰 까마귀(raven)의 울음소리가 우렁찼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끼리끼리 엎치락뒤치락 장난치며 크게 원을 그리는 것이 보기 좋았고 팔락팔락 떨어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숲이 무성하니 철새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마구 떠들며 나무에..

詩 2017 2017.11.02

봄바람/배 중진

봄바람/배 중진 때아닌 봄바람이 살랑살랑 어두운 곳에도 찾아와 두껍게 걸친 옷을 하나씩 벗겨내 약간 당황은 하면서도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싫지 않아 신선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니 오래간만이어서인지는 모르되 서로가 떨고 있었으며 풋풋한 냄새까지 더하는데 열정을 태운 것은 잠깐이었고 아지랑이같이 사라져 그리움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하면서 온다간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사라진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그 이후 몸살이 나고 재채기를 연신 하며 구석마다 찾아다니느라 맑은 콧물은 눈물같이 쏟아졌으며 정신은 안개 속을 헤매듯 혼미하고 얼마나 부르짖었는지 목소리까지 변하였어도 갈망하는 봄은 보이지 않아 처음 만났던 해맑은 사람이 아닌 몰골로 세상이 두려워 어두운 곳에 처박혀 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남들은 실성한 사..

詩 2017 2017.03.04

불행의 순간/배 중진

불행의 순간/배 중진 한겨울에 모처럼 날이 좋으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밖으로 나와 즐기던 먼 옛날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논을 막아 물이 저수지 같이 고여있다가 꽁꽁 언 얼음판에서 종일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느라 정신이 없었던 고향에서 운명인지는 몰라도 공교롭게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겨워 깔깔거리던 말만 한 처녀와 트랙을 만들어 놓고 쏜살같이 짓쳐가던 스케이터가 피한다고 하면서도 충돌하여 서로 나가떨어졌는데 불행하게도 소녀는 궁둥이뼈가 으깨져 다시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게 되었어도 촌에서 동네지 간에 더는 어쩔 수가 없어 슬펐고 남의 일이라 마음만 잠시 아팠을 뿐이지만 당사자는 걸음 걸 때마다 얼마나 고통이 심하여 내적으로 위축되고 한순간을 후회했을까 안타까웠는데 생각지도 않게 반세기가 지나서 만났고 그..

詩 2016 2016.06.29

잠 못 이루는 밤/배 중진

잠 못 이루는 밤/배 중진 어린 마음에 간절한 소망 하나 있었으니 엄마에게 나의 방패연을 보여 드리는 것이요 하늘 높이 솟구친 힘찬 모습을 보셨으면 부엌이나 마루에서 사랑방 지붕 위로 쭉쭉 뻗어 올라가는 태극마크도 선명한 방패연을 보셨으면 해서 줄을 스르르 풀었다간 멈추면 용을 쓰면서 승천하는 모습에 나 자신도 감탄하며 꼭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그만 동네를 지킨다는 거대한 느티나무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안절부절못하게 하고 기세 좋게 솟구치던 늠름한 모습은 간데없고 갈기갈기 찢어져 바동 바동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통곡을 하고 있으니 동지섣달 긴긴 밤 어이 잠을 이룰까 그 여린 맘을 짓밟기라도 하듯 문풍지는 끝도 없이 굉음으로 절규하고 문이란 문은 집을 때려 부술 듯 사방에서 들썩거리는 데 높은 곳에..

詩 2013 2013.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