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2 34

추상/배 중진

추상/배 중진 잊을 수가 없지요 일순간도 말입니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은 빠르게 흐릅니다 막을 수도 없고 감히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좋은 일이라면 어쩌다 잊을 수도 있겠지만 돌려놓고 싶은 촌각이 더욱 많기에 간절한 것이지요 그렇게 아픔은 쌓이고 연륜이 겹겹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순간마다 잃는 그 무엇을 어찌 감당하겠는지요 눈물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지 싶답니다. 추상/배 중진 잊을 수가 없지요 일순간도 말입니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은 빠르게 흐릅니다 막을 수도 없고 감히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좋은 일이라면 어쩌다 잊을 수도 있겠지만 돌려놓고 싶은 촌각이 더욱 많기에 간절한 것이지요 그렇게 아픔은 쌓이고 연륜이 겹겹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순간마다 잃는 그 무엇을 어찌 감당하겠는지요 눈물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

詩 2022 2022.12.30

산타클로스/배 중진

산타클로스/배 중진 아침에 굴뚝으로 누가 들어간다 깜짝 놀랐다 그림자였다 우리 굴뚝이 햇빛에 의해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그곳에서 움직이는 것이 옆 건물의 벽에 그대로 보였다 처음에는 한 명이었는데 두 명으로 늘어났다 누군가 고통을 받고 있어 선물을 가지고 방문하셨지 싶다 나도 덩달아 누군가에게 일 년 동안 신세 진 것을 오늘 갚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기적절하였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산타클로스가 되길 성탄절을 통해 빌어본다 아니 항상 관심을 두고 배려를 하고 사랑을 베풀자

詩 2022 2022.12.20

첫눈/배 중진

첫눈/배 중진 그렇게 어둡지는 않은데 첫눈이 내릴 거라는 예보다 더불어 까마귀들이 성화를 부리며 뭔가를 아는 눈치고 즐기고 있다 우리 어려서 눈이 내릴라치면 그냥 마당에서 이유도 모르고 뜀박질하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린 먹을 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는데 까마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일이라는 것을 걱정이나 하고 있을까 얼마나 내릴까 전혀 예측하지는 못하지만 흰 눈에 덮여 있는 곳에서 먹을 것을 어떻게 찾을까 설마 죽기야 할까 하루 먹지 못한다고 배는 곯을망정 그렇기까지야 할까 말없이 눈보라는 치는데 까마귀는 아우성치지도 않는다 간 곳을 모르겠고 조용하다

詩 2022 2022.12.12

도리깨질 타작/배 중진

도리깨질 타작/배 중진 콩이 쫙 깔렸던가 밀인가 아니면 보리가 널린 마당이라 생각하는데 어려서 확실하지는 않다 고등학생인 딸을 엎어 놓고 회초리를 이용하여 사랑의 매질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살벌함이 감돌고 너 죽고 나도 죽자는 식이다 뭣 때문에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우연히 5살짜리가 그 집에 놀러 갔다가 목격하고 도망친 사건의 기억이 영원하다 누구한테 발설도 못 하고 혼자만 끙끙대며 악몽을 곱씹었다 재원인 딸을 오죽하면 개 패듯이 팼을까 교복 입은 채로 도리깨질해댔고 가방이며 책을 아궁이에 쏟아부으며 태울 기세였다 그런 어머니에게 매달려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가녀린 여학생 어떻게 끝났는지 까마득히 잊었다 아마도 끝까지 여고를 졸업했지 싶다 그런 수모를 당한 여인이 80세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끝내 어머니를 용..

詩 2022 2022.12.08

기침감기/배 중진

기침감기/배 중진 몸이 이상했다 계속 콜록거린다 누구와 만난 적도 없는데 속이 끓는다 몸을 최대한도로 구부리고 털을 곤두세우며 모든 무기를 날카롭게 휘둘러 재빠르게 대응하지만 덩치가 엄청나게 크고 묵직한 녀석 앞에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여 이빨을 드러내 으르렁거려도 방법이 없다 하루, 이틀 무력하게 잠만 자나 옛날 쌔근거렸던 숨소리는 어디서 인가 구멍이 났는지 이상한 소리만 날 뿐이다 어디 나만 물어뜯어야 할 나약한 고양이인가? 만만한 밥인가? 제풀에 지쳐 다른 곳으로 가겠지

詩 2022 2022.12.03

은행나무/배 중진

은행나무/배 중진 지나칠 때마다 뭔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열매도 열리지 않았고 색깔이 지저분했다 관심 둘 일이 어찌 은행나무뿐이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험한 세상 지혜롭게 살아가야지 이웃의 은행나무들은 가을이 됨과 동시에 화려한 노란색을 마냥 뽐내다가 화무십일홍인지라 쓰레기 더미가 되어 사라졌지만 잘난 것도 없으면서 독야청청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도 않게 영하로 뚝 떨어진 날 여름 내내 시름시름 앓던 못난이가 더 살고 싶었는지 푸른 은행잎을 몽땅 떨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년을 기다린다 몹시 기다린다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다

詩 2022 2022.11.23

아들의 똥/배 중진

아들의 똥/배 중진 나는 아직도 날고구마를 탓한다 지금, 남들이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린 나이에 욕심껏 먹은 것은 날감자뿐이었다 끙끙거리며 어찌나 힘들어했던지 아버지는 외양간에서 소를 내다 매는 바깥마당에 일을 보라고 하시곤 굵어 감히 나오지 않는 것을 손으로 쑥 빼내셨다 아주 고맙다는 생각을 그 당시에는 해본 적이 없다 지금은 눈물겹도록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잊지 못한다 나의 무거운 짐을 평생토록 묵묵히 대신 짊어지셨던 분이시다

詩 2022 2022.11.20

바나나/배 중진

바나나/배 중진 어린 시절 과연 몇 개의 바나나를 맛보았을까 누군가 바나나를 수입해서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도 있겠지 유학 와서 배고플 때를 제외하곤 손이 가지 않은 것은 속이 거북해지기 때문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몸에 좋다고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다 놓고 먹는다 나나 바나나는 왜 그리 비슷할까 겉은 노란빛이면서도 속은 다른 색이니 젊어서 풋내가 나듯 싱싱한 것은 풀냄새가 난다 하루가 다르게 몸은 이상함을 느끼고 제풀에 익어가는 것은 빨리 먹어 치워야 한다 백발이 늘어나면서 고향 생각이 절로 나듯이 깨끗했던 것도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있다 몇 번 넘어지고 긁힌 것은 다른 부위보다 먼저 표시가 난다 상처투성이로 변한다 만신창이가 되어 먼 산을 바라본다 결국은 홀로 남는다

詩 2022 2022.11.19

인면수심/배 중진

인면수심/배 중진 높은 산이 둘러쳐 있고 만년설이 녹지 않는 아름다운 곳 인간과 더불어 각종 곰들이 삶을 누리는 곳 자연을 자연히 사랑하는 평화스러운 사람들 11살짜리 소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숨바꼭질하다가 연기처럼 홀연히 행방이 묘연했다 곰이 출몰하는 지역이라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이웃이 총동원되어 근처를 샅샅이 뒤졌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모든 이들의 애간장을 태우며 속절없이 세월은 흘러 무심한 2년이 지났건만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다 가까이 거주하는 성도착자를 취조한 결과 그 시간 지나치는 자동차를 떠올렸고 생각지도 않은 61살의 독거노인이자 금속 연마공을 찾아냈다 괴팍한 철면피한은 공교롭게도 자기 딸들이 11살일 때 몹쓸 짓을 저질렀고 두 번이나 이혼당하여 찾아간 경찰들에게 과거의 아픔을 호소하..

詩 2022 202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