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2 34

슬픔의 종말/배 중진

슬픔의 종말/배 중진 유대인들을 학살하던 독일군 폐허 된 건물 더미에서 숨어 지내던 인간을 무차별 사살하는 잔인무도한 병졸들 무너진 건물 속에서 배고픔에 헐떡이고 공포에 떠는 불쌍한 인류 전쟁은 냉혈한을 만들고 죽음과 사투하는 생존자들 발각되기만 하면 죽음이고 처단하는 것도 허용되는 악마의 세상 그런 환경에서 독일군 장교와 Jewish 피아니스트가 만났다 한 명 더 죽여도 그만이고 재수 없게 걸려 죽어 나뒹굴어도 잘 돌아가는 미친 세계에서 믿거나 말거나 인간애가 싹트기 시작했다 있는 자가 동정을 펼치기 시작했고 권력자가 아량을 베풀었다 기적이 벌어졌고 배척받던 인종이 살아났다 어둡던 사회에 한 줄기 광명이 비치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지가 바뀌었다 손가락이 풀린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귀신같이 탔..

詩 2022 2022.02.09

함박눈이 내리던 새벽/배 중진

함박눈이 내리던 새벽/배 중진 함박눈이 쏟아지는 줄도 모르고 곤히 잠들었던 먼 옛날 아랫방엔 할머니가 주무시고 사랑방엔 할아버지가 기침을 하시고 건너방엔 우리 6형제 옹기종기 모여 단잠을 자는데 통학생이 방학 때인데도 불구하고 고등학교에 가야 한단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단 하루 서두르는 날이라 어머니만 알고 계시는데 깨우지 않아도 제 할 일을 하는 자식은 자신만 챙기면 되었지만 어머니가 하시는 일은 자신을 위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더욱 일찍 일어나셔 아들의 밥상을 차려주시는데 식구 전부를 위한 조반을 준비하시기에는 너무 일러 할아버지 밥상이 식을 염려가 있어 작은 냄비에 아들만을 위한 밥을 지어 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털신을 아랫목에 묻었다가 막 나가려는 아들에게 내어주신다 뽀드득 소리가 나는 정겨운 새..

詩 2022 2022.02.03

신년운세/배 중진

신년운세/배 중진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느닷없이 생각이 났다 동네를 수호하는 오래된 느티나무, 둥구나무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린아이는 할아버지 논이 그곳에 있다는 것과 밭이 또한 건너편에 있어 불과 몇 번 지나다녔을 뿐인데 왜 특별한 시간에 그곳에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연세 드신 할아버지가 농담을 하시는 것인지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인지는 몰라도 귀에 솔깃하게 들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듣게 되었다 집안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배상환, 상철 씨인가의 존함을 가지신 분이 계셨는데 이지함이 쓰신 토정비결이 있다면 그분도 비슷한 책을 발간하셨단다 어렸을 적에 빨간색의 책을 본 적도 있다 하루는 그 예언자를 만났고 안녕하시냐고 안부를 여쭌 다음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네요 하고 근황을 물었..

詩 2022 2022.01.30

짝사랑/배 중진

짝사랑/배 중진 Begonia가 꽃을 피웠어요 작년에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더니 작은 흰꽃을 큰 잎사귀 뒤에 숨어 우리 부엌을 훔쳐보고 있었어요 높고도 길게 솟구치지도 않았고 보란 듯이 남보다 앞장서지도 않고 1월을 깨닫지도 않았을 테지만 코로나바이러스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이에요 베고니아는 나의 손길을 기다렸을까요 인간의 숨길이 닿지 않기를 바랐을까요 앙증맞은 모습이었지만 컴컴한 어둠 속 부엌에서조차 숨 쉬는 생물이 있었어요 오래전 1월 1일 떠난 친구가 살며시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라 살갑게 반가웠으며 사랑을 주는 꽃임을 새삼스럽게 느껴봅니다 배중진2022.01.30 14:59 3/6/2018 Wonders of Water, Philadelphia Flower Show 배중진2022.01.30 15:01..

詩 2022 2022.01.30

사소한 약속/배 중진

사소한 약속/배 중진 옛날, 옛날 아주 오래전에 조용한 마을에 많은 친구가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방향이 정반대인 통학생들이 같은 역에서 기적처럼 만났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들판을 달리고 기적소리를 연신 내면서 강을 건너 서울과 부산의 중간지점인 작은 역에서 연착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초등학교 친구가 있고 중학교 친구도 있으나 고등학교는 각자 다른 곳을 택하여 다니고 있다 그러나 우린 같은 마을에 현재 살고 있고 의기투합하여 강으로 헤엄치러 가자는 뜻을 모았다 30분 후에 만나기로 한 장소에 제일 먼저 나가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중학교 친구도 바로 나와 믿음을 주었으나 초등학교 친구는 훨씬 뒤에 어슬렁 거리며 나왔다 아무 뜻도 없었고 중요하지도 않은 약속이었지만 반세기가 지나도록 초등학교 친구의..

詩 2022 2022.01.28

오미크론 변이 확산/배 중진

오미크론 변이 확산/배 중진 꿈이 뒤숭숭했다 좁은 공간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양쪽으로 길게 서 있는데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나 또한 마스크를 깜빡 잊고 걸치지 않아 그들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가야만 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셔츠(shirts)를 잡아당겨 입과 코를 가렸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꿈속에서 희망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장소와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죽음으로까지 몰리지는 않았으며 꿈이라 생각하며 도망치지도 않았지만 분명 현실과 관련된 뭔가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망상이 종일 따라다녔고 꿈을 잊지 않고 사실과 접목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새로운 삶은 발생하지 않았다 무난하게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오미크론을 따 돌렸다 요즘 같은 추세라면 조만간 모..

詩 2022 2022.01.21

한겨울의 고향/배 중진

한겨울의 고향/배 중진 한파가 몰아쳤다고 동파가 바로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주인이 없는 세상 아껴주던 마음 그리움 되어 동맥경화처럼 멈췄지 싶다 오고 가는 모든 것을 자상하게 살펴주셨는데 찬바람만 휑하니 마당을 휘젓고 별빛 잔뜩 쏟아진 지붕 아래 반갑지 않은 서생원만 살판났구나 꼭꼭 닫힌 대문 안으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정적만이 감돌뿐 날아가는 까치 서럽도록 잠잠하고 해님도 기웃거리다 서산으로 넘어간다 12/24/2011 사진 우린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부엉이가 우는 곳엔 여우가 객 객 거리면서 따라다닌다고요. 본적도 없는 무서운 동물임에 틀림없고 아침에 보면 부엉이는 둥구나무 위에 꼼짝하지도 않고 앉아 있곤 했지요. 살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지 싶어 닭살 돋던 추억입니다. ..

詩 2022 2022.01.18

도둑놈/배 중진

도둑놈/배 중진 농촌에 사시는 분들은 이웃의 논으로 들어가는 물길이 막히면 애써 터준다 고구마밭 후빈 것을 보며 배가 고픈 사람의 짓이라 생각도 하고 무수가 발로 걷어채인 것은 아이들의 장난이라 여기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며 아이들 자라고 각박한 삶이 엄습하고 경쟁이 심하면서 먹고사는 것에 민감해지고 더 좋은 삶을 위하여 농촌을 떠나는 사람이 늘면서 남의 것을 탐내는 물욕으로 점점 물들어 간다 인간이 우글거리는 곳에는 도적이 바글거리고 촌놈이 미국에 오니 이제까지 보지 못한 거대한 Market으로 걸어 들어가 무지하게 진열된 상품들을 원하는 대로 밀고 가는 Cart에 쓸어 담고 나오면서 계산하는데 유학 온 목사님의 아들이 주머니에 견물생심의 발로인지는 몰라도 좀도둑이 되어 집어넣으면서 니글거린다 그것도 모..

詩 2022 2022.01.17

권선징악/배 중진

권선징악/배 중진 선행을 장려하고 악행을 징계하는 일 우리는 잘하면 상을 받고 모두가 못하면 벌을 받았다 누가 한 짓이 잘하고 누가 한 행동이 잘못됐는지 구태여 따지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그렇게 판단을 쉽게 하였다 자신을 모두 사랑하지만 자기중심주의로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가진 것이 많다면 가는 길의 앞에 있는 사람은 모두 걸림돌이 되어 제거하여야만 직성이 풀린다 무려 40여 년이나 걸쳐 법망을 피해 도망 다녔고 남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 필요 이상으로 알고 있던 두 사람이 덩달아 즉결 처형식으로 총격 사망했고 한 사람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아직도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다 자신만만했던 사건들을 공공연히 까발리고 다녔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했으나 그놈의 주둥아리 때문에..

詩 2022 2022.01.11

뒤늦은 후회/배 중진

뒤늦은 후회/배 중진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 시도 때도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성화도 이런 성화가 없다 짜증이 서서히 나기도 한다 갖은 방법으로 사진 보내주고 동영상도 보내오며 누군가 어렵게 만든 아름다운 것을 허락도 없이 첨부해서 보내주니 즐기게 되어 감사할 일이지만 밤이고 낮이고 전화 대신 운전하거나 회의에 참석 중인데도 혼자 즐기고 있는 여유로움을 방해한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울려 퍼진다 성가신 것 다 차단하고 무조건적으로 붙여 보내는 짓 하지 않고 시간을 뭉갠다 뜸을 들인다 어쩌다 보니 그런 기술을 써먹어야 할 때가 되었지만 할 줄을 모른다 고집과 아집으로 무시했더니 첨단을 걷는 사람에게 저만큼 뒤처졌다 *무조건적으로 *무조건 *조건 없이

詩 2022 202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