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2 34

패륜아/배 중진

패륜아/배 중진 부모님은 나에게 과연 무슨 존재일까 지나친 사랑을 받았던 망나니 손 벌리면 쥐여주는 현금 부족함이 없는 난잡한 생활 어려서는 사랑이려니 세상을 알아가며 눈치 보고 점점 대담해지며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패륜아 도박에 빠지고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적은 바닥을 치고 물 쓰듯 탕진하는 생활비 아버지의 카드에서 엄청난 돈을 허락도 없이 유출하다 발각되어 따끔한 꾸지람을 듣고서는 살기충천하다 재주껏 대학교를 벗어나 E-Z Pass가 있어도 고속도로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집안 식구만 아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도끼를 휘둘렀다 돈을 주지 않는 아버지는 16번을 내리쳤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과잉 사랑한 어머니는 3번 그리곤 아무도 모르게 밤새 차를 달려 학교로 돌아왔다 ..

詩 2022 2022.11.13

국화/배 중진

국화/배 중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는 새봄 연로하신 할아버지 젊음을 가꾸신다 작은 터에 몇 가지 꽃을 일찍 심어 냉혹한 겨울엔 아무도 모른다 이른 봄 회심의 미소를 지으시며 물끄러미 담배를 꼬나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준다 걷지도 않으시고 문밖에 쭈그리고 앉은 모습이 항상 떠오른다 낙엽이 흩어지며 그동안 자란 국화가 화려한 꽃을 피웠다 꽃 위로 떨어진 갈잎이 무성하지만 방긋 웃는 모습이다 어둠이 내리깔리고 새들도 사라진 저녁 발소리 죽여가며 산책하다가 몇 송이 국화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하지만 어르신은 보이지 않는다 담배 냄새도 늦은 가을 하늘 사라졌다

詩 2022 2022.11.07

가을을 싹둑 자르고 있네/배 중진

가을을 싹둑 자르고 있네/배 중진 요사이 이사 준비하느라 마음이 매우 심란하다 몇 년 동안 쌓아온 나의 것과 남의 것이 헝클어져 산만했었는데 깔끔하게 정리해서 새롭게 이전하여야 한단다 원래부터 나의 것이 아닌 것은 과감하게 안타까워도 내쳐야 한다 한 번 읽은 것으로 만족하여야 한다 정말이지 이런 글도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렸기에 후딱 지나친 것은 아리송하다 생면부지 낯선 곳에 대한 불안감 길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마음 추억과 이별하는 심정 정이 들었기에 뒤를 자꾸 되돌아본다 어디선가 고목을 자르는 굉음이 들려온다 차분하게 하루 쉬고 싶은데 막 휘젓는다 모두가 미쳐서 돌아가는 요지경 속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쁜 인간이 가을을 싹둑 자르고 있다 좋은 세상이 도래하면 마음껏 끼를 발산하고 싶었는..

詩 2022 2022.09.30

천벌을 두려워하는 세상이었으면/배 중진

천벌을 두려워하는 세상이었으면/배 중진 인간이 처음부터 사악한 것은 아닐진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점점 육체적인 쾌락만 추구하다가 이성을 잃고 친척의 어린아이를 범하고 말았다 재판과정에서 이상하게도 뭔가 잘못되었나 죄질이 추악한 것에 비하여 형벌은 매우 약했고 흉악한 범인은 그 정도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었는지 감쪽같이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가 질주한 자동차가 화염에 휩싸여 형체도 알아보기 어렵게 전소했고 목걸이, 시계, 신발, 타다 말은 극히 일부의 신체가 전부였다 모두 그는 천벌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남기고 간 쓰레기처럼 그도 사라졌는데 보험금은 부인이 수령하여 흥청망청 물 쓰듯 유용되었고 유령과 같이, 그림자같이 뭔가 수상쩍은 물체가 보이..

詩 2022 2022.08.20

블로그/배 중진

블로그/배 중진 억세게도 재수 없는 놈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는 했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Yahoo에서 놀다가 밟은 곳이 daum 다음은 어디일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뜻도 모르는 티스토리 퍼 나른 것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많고 퍼질러 놓은 것이 첩첩 쌓여 산더미 퍼떡거리며 이사 준비를 밤낮으로 하지만 퍼붓듯 원망하며 누군가를 저주한다 방명록을 관리하고 댓글을 정리하고 답글을 분리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이름이 끝없이 꼬리를 문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할 일은 태산 같고 불같은 심정으로 삼복더위에 땀을 삐질삐질 흘려도 마음만 급할 뿐, 진척은 굼벵이 속도 방명록 연기처럼 사라지고 댓글 나뭇가지 쳐내듯 잘라내고 답글 구렁텅이에 던져버려 팔다리 다 자른 몸통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는데 온통 답..

詩 2022 2022.08.09

고목/배 중진

고목/배 중진 높지도 않은 산중에 고목은 있었다 알지도 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겨울을 용케 버팅기고 새봄을 맞이하나 싶었는데 그에게 비밀 있었는가 보다 간밤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어도 바람은 불지 않아 앙상한 가지조차 떨지 않는 따스한 날 햇볕은 늦기 전에 자리 잡으라 빛을 내려주지만 황송한 마음 숨길 수가 없었나 보다 갑자기 숲속에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사슴이 힘겨루기하는가 싶었다 멧돼지 뭔가에 놀라 달아난다고까지 생각했다 가지가 부러지며 거목이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며 넘어간다 이웃을 배려하느라 큰소리를 냈던 것이다 가까이 지냈던 동물들 피하라고 황급한 마음 전달한 것이다 간신히 이웃 친구 부여잡고 못다 한 사랑 전하면서 마침내 먼지를 털며 그동안의 정을 토해낸다 오래전 그 누군가 그렇게..

詩 2022 2022.04.13

Crocus/배 중진

Crocus/배 중진 어제 집 앞을 지나갈 때는 보이지 않았다가 오늘 날씨가 푹하다 생각했는데 그사이에 나왔지 싶다 가상하기도 하지 혹한에 굴복하지 않고 희망을 전하는데 옆을 바라보니 집을 팔려고 내놨구나 주인은 너의 그런 영특함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려고 하니 무슨 일일까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심적으로 아니면 육체적으로 이상이 생겼을까 사랑스러운 너의 모습을 즐기지도 못하고 떠나려는 심보는 무엇일까 난 언제나 당신을 기다립니다 내년이고 후년이고 계백2022.03.08 17:08 어제 산행에서 목격한 무명묘지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저도 조상님의 산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처지라 보지 않은 것만 못했답니다. 좋은 이웃이나 벗은 맑은 산소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詩 2022 2022.03.08

터줏대감/배 중진

터줏대감/배 중진 잔설이 남아 있는데 딱따구리가 혼신의 힘을 쏟으며 언 나무를 두들겨보지만 둔탁한 소리만 날뿐 여의치 않아 보였으며 남쪽에서 갓 돌아온 Robin 새는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 강태공의 심정이로구나 삼월의 정기를 받은 정원에 노란 싹이 돋아나며 희망을 점점 키워가는데 일대를 주름잡던 산증인 거대하고 높은 터줏대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라 비록 길을 막고 있었으나 고목이 먼저 자리 잡았기에 피해 다니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존경심마저 표했는데 언저리가 평평하게 다져졌고 콘크리트로 Sidewalk을 만들어 놓았다 아는 사람만 알고 새로이 길을 여는 사람은 과거를 전혀 모르지 싶다 그러니 슬픔이고 뭐고 알 리가 없으며 추억하는 사람에게만 잔설처럼 남아 있다 2022.03.03 08:38 Bryan..

詩 2022 2022.03.03

Robin/배 중진

Robin/배 중진 떠난 지가 오래되었다고 체념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춥다는 핑계로 날아갔다 남이 가니 어쩔 수 없이 간다고 에둘러댔다 그러던 네가 발각되었다 갔던 것이 온 것인지 가지 않고 숨어 있다가 들킨 것인지 여러 변명을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제 딴에도 반가움을 표시하느라 꼬리를 들썩들썩거리고 머리를 번쩍번쩍 치뜨고 부리를 쩍쩍 벌려 지저귄다 사랑에 실패하여 떠나가지 못했는지 날개가 부러져 남았는지 먼 곳 찾아가다가 중간에 낙오되었는지 우리네 만큼 사정은 많겠지만 긴 겨울 극복하고 살아남았으니 다행이고 동장군이 채 물러가지도 않았는데 입성하여 가상하고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와 감사하니 내 너를 어쩐다? 2022.02.20 08:34 로빈 아메리칸 로빈 American r..

詩 2022 2022.02.20

금빛 마스크/배 중진

금빛 마스크/배 중진 5/12/2020일 자로 친구가 보내준 큰 봉투를 우연히 꺼내 사용하고 있다 무슨 사연이 실려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기장을 더듬고 하루를 간편하게 요약한 서류를 펼쳐 본다 그제야 큰 봉투에 담겨온 보물을 추억할 수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마스크를 사려고 백방으로 돌아다녔지만 선견지명이 있는 약삭빠른 분들이 매점매석하여 우리 같이 세상을 편하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에겐 국물도 없었던 막막한 시절이었는데 소중한 친구가 그런 사연을 알아채고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 티베트 친구에게 부탁하여 약간 작지만 두 장의 마스크를 보낼 때 사용한 봉투였다 돈이 있어도 품절되었던 생명줄 금으로 만든 것이나 진배없는 마스크였다 눈물겹도록 감사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덕분에 우린 살아남아..

詩 2022 2022.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