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2

천벌을 두려워하는 세상이었으면/배 중진

배중진 2022. 8. 20. 13:59

천벌을 두려워하는 세상이었으면/배 중진

 

인간이 처음부터 사악한 것은 아닐진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점점 육체적인 쾌락만 추구하다가

이성을 잃고 친척의 어린아이를 범하고 말았다

 

재판과정에서 이상하게도 뭔가 잘못되었나 

죄질이 추악한 것에 비하여 형벌은 매우 약했고 

흉악한 범인은 그 정도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었는지

감쪽같이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가 질주한 자동차가 화염에 휩싸여 형체도 알아보기 어렵게 전소했고

목걸이, 시계, 신발, 타다 말은 극히 일부의 신체가 전부였다

모두 그는 천벌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남기고 간 쓰레기처럼 그도 사라졌는데

 

보험금은 부인이 수령하여 흥청망청 물 쓰듯 유용되었고

유령과 같이, 그림자같이 뭔가 수상쩍은 물체가 보이는가 싶더니

한참 후에 남자 친구라고 사귀는 사람이 있지만 

아이들에게까지도 거짓말하여 아빠가 아니고 새로운 남자라고 강요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멕시코로 넘어가 얼굴을 성형하고 치아를 교정했으나

민감한 아이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경찰이 부인을 뒤따라가 체포했을 때도 새로운 신분증을 제시하며

그런 사람 아니라고 펄펄 뛰면서 부정했지만

 

지문과 DNA까지는 감히 손대기 어려웠으리라

아무리 뛰어난 범죄자라도 완전범죄 저지르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지라

하나둘씩 검증되기 시작했는데

과연 차 안에서 발견된 인간의 정체는 누구란 말인가

 

치밀하게 부인까지 합세하여

컴퓨터를 이용하여 시체를 훼손하는 법

휘발성이 강한 물체를 이용하여 자동차를 전소시키는 법

차를 계곡으로 밀어 사고로 추정하게 만드는 법 등을 배웠고 실행했으며

 

시신은 최근에 사망한 81세의 할머니였고

공동묘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매장되어 있어 악용하기 쉬웠고

묘를 참배하는 가족이 적은 것에 주목하여

밤중에 파내서 모든 증거를 인멸했다

 

불쌍한 할머니

죽은 것도 억울한데 범죄에 이용되고

부모로 물려받은 멀쩡한 시신이 훼손되고

장사 지낼 후손들마저 없어 범인을 검거한 관계자들이 엄숙하게 장례를 치러드려야만 했다

 

차라리 천벌이나 받을 것이지

보험 사기죄, 시신 훼손죄, 30년에 유아 강간죄 20년 추가

수사를 방해하고 범행을 협조한 부인도 20년

가공할 범죄는 점점 교묘해지고 악랄하니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詩 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화/배 중진  (46) 2022.11.07
가을을 싹둑 자르고 있네/배 중진  (12) 2022.09.30
블로그/배 중진  (7) 2022.08.09
고목/배 중진  (0) 2022.04.13
Crocus/배 중진  (0) 202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