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2

패륜아/배 중진

배중진 2022. 11. 13. 16:26

패륜아/배 중진

 

부모님은 나에게 과연 무슨 존재일까

지나친 사랑을 받았던 망나니

손 벌리면 쥐여주는 현금

부족함이 없는 난잡한 생활

 

어려서는 사랑이려니

세상을 알아가며 눈치 보고

점점 대담해지며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패륜아

 

도박에 빠지고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적은 바닥을 치고

물 쓰듯 탕진하는 생활비

 

아버지의 카드에서 엄청난 돈을

허락도 없이 유출하다 발각되어

따끔한 꾸지람을 듣고서는

살기충천하다 

 

재주껏 대학교를 벗어나

E-Z Pass가 있어도 고속도로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집안 식구만 아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도끼를 휘둘렀다

 

돈을 주지 않는 아버지는 16번을 내리쳤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과잉 사랑한 어머니는 3번

그리곤 아무도 모르게 밤새 차를 달려 학교로 돌아왔다

완벽한 살인사건

 

피투성이가 되신 아버지는 평상시처럼 일어나

문밖에 있는 신문을 줍다가 그대로 사망하셨고

얼굴이 엉망이 된 어머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아들의 범죄행각을 천부당만부당하다며 감싸고돈다

 

완전범죄는 하나씩 밝혀진다

고속도로를 이용한 수백 장의 카드에서 DNA가 검출됐고

노란색의 Jeep이 신나게 달리고 있는 사진이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집 안에 있는 경보기에서는 누를 때의 시간과 비밀번호가 선을 타고 관리하는 회사로 전송됐다

 

아무리 기계를 도끼로 내리쳤어도 이미 흔적은 남았다

살모사처럼 엄청난 보험금을 타서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마음껏 질탕하게 놀아보려는

허황한 한갓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감방에서 썩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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