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배 중진
인물 좋은 한량이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마당 옆에 있었고
물소리에 맞춰 한시를 읊었으며
복숭아나무를 심어 꿈을 꾸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처가 버젓이 있었고
첩이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음을 싸움을 통해 알았으며
나와 비슷한 잘생긴 아이가 뭣도 모르고 혼자 돌아다녔다
형들과 나이 차가 있었고
막내아들이라 금지옥엽인 양 애지중지 키우며
남의 넓은 집을 인수하여 생활이 넉넉한 모습이었고
재롱떠는 것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처는 외로움을 술로 달래고 있었고
첩은 조용하게 내조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청년이 된 아들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폐병으로 일찍 세상을 하직했다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행동했던 분이신데
그런 처참한 꼴을 당했던 것이다
애처롭게 살려달라는 단말마의 아우성을 영원히 잊지 못하면서
넓은 집을 어찌 지켰는지 모르겠다
보리쌀을 자루에 담아 자전거에 싣고
복숭아와 바꿔 먹던 시절이 있었고
딱딱한 것을 좋아하시는 대가족과
물렁물렁한 것을 더 선호하는 나의 대립이 시작되었던 곳이기도 했다
12/6/2023 Brandywine Museum of Art, Chadds Ford, PA 19137
12/6/2023 Brandywine Museum of Art, Chadds Ford, PA 19137
12/6/2023 Winterthur Museum, Pennsbury Township,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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