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0 128

수수께끼/배 중진

수수께끼/배 중진 부엌의 물이 기가 막히게 잘 빠진다 고질적인 체증이 언제였더냐는 식이다 세척기를 돌리면서도 구정물이 새는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이 조금씩 떨어지던 곳이 아주 바짝 말라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에서 수챗구멍이 막혀 끙끙거릴 때 어째서 밑에 층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시원하게 소통하는 지금까지도 그것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어 골똘히 생각한다 그들은 민감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집에서 음식을 끓여 먹지 않는가 그들은 부엌을 아예 사용하지도 않는가 그들이 뭘 하는지를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 점점 궁금했고 아무리 머리를 돌려도 해답이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앙상한 가지만 남긴 나무와는 사뭇 달리 답답하기만 하다 11/11/2019 Bronx..

詩 2020 2020.11.28

만종/배 중진

만종/배 중진 우리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소식에 얼어붙었다 토요일일까 일요일 오후일까 미국에서는 금요일 오후였지만 작은 라디오를 틀어 놓고 집안 식구들이 총동원되어 뭔가를 하던 밭에서 비보를 듣고 눈물을 찔끔거렸다 고개를 숙이고 꼼짝하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미국 대통령은 무엇이고 울음을 터트릴 만큼 영향력을 끼쳤단 말인가 더 자세한 기록은 나오지 않고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어 답답하지만 영원히 가슴속에 존재하는 대통령이다 57년이 흐른 미국에서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뉴스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뭐들 그렇게 바쁜지 일언반구도 없다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암살만큼이나 풀리지 않는 이야기를 뒤늦게 꺼내 말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있고 저 ..

詩 2020 2020.11.24

키위/배 중진

키위/배 중진 키위를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천적이 없어 자신에 대한 방비가 허술하고 무서움에 꽁무니를 감추며 숨을 필요가 없고 살기 위해 도망칠 이유도 없다 종일 먹기만 하여 살이 찌고 날개까지 퇴화하였다 한때는 꿈을 좇아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정도 풍족함이 찾아오자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맛 좋고 기름진 음식만을 고집하였다 땀 흘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어느 날 뛰려 해도 뛸 수가 없었다 도망치려 해도 날 수가 없었다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게 사고방식이 삐뚤어졌다 그렇게 변했다 누굴 탓할 수가 없다 *한때는 꿈을 좇아 열심히 살았지만 한때는 꿈을 쫓아 열심히 살았지만

詩 2020 2020.11.22

물/배 중진

물/배 중진 갑자기 부엌의 싱크대에 물이 고인다 근심이 고이기 시작한다 잘 빠질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관심도 두지 않았는데 무엇이 불만인지 퉁퉁 볼멘소리를 내며 갈 곳을 모른 체한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것이 물이고 버릴 때 약간 더러워도 물로 보았지 않았던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물을 마시고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물을 사용하고 들고나는 것을 똑같이 관리하고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불균형으로 돌아왔다 문선비 *절이 있어 마음이 밝아지고 빛이 있어 그림자는 더욱더 검게 나타나는가 봅니다. 단풍이 절정이지 싶고 빛이 있어 더욱 아름답습니다. 멋진 만추가 되시기 바랍니다. 01/06/2018 오후 산책길에서 만난 우리 동네 집들. 누가 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모두 건강하고 건전하고 건실한 이웃 관계..

詩 2020 2020.11.20

옛터/배 중진

옛터/배 중진 앵초가 핀 자리에서 흔적만 남은 집터를 구경했다 사진에서 보았기에 형체는 없었어도 선명하게 보였다 밑으로 더 내려가 옆모습도 살폈다 영웅이었다면 보존했을 텐데 엉뚱한 자들이 모방할까 봐 없애려고 노력은 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품고 있는 자의 가슴에서 영원히 삭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agle's Nest 사진은 없고 그곳에서 $40.00주고 산 책에서 사진을 다시 찍어 옮겨 보았는데 그때의 기분은 약간 살아있어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9/16 - 9/26/2004년 11/11/2019 Bronx Zoo Andean Cock-of-the-Rock Male 봄꽃 앵초 Primrose Primula vulgaris 이 카드를 사기 위하여 새벽 06:00시에 일어났다.

詩 2020 2020.11.17

만추/배 중진

만추/배 중진 앙상한 나무가 들어달라고 하소연하듯 버티고 음울한 낙엽이 너저분하게 산더미처럼 쌓이고 철 지난 개나리 염치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삐쭉거리고 엉성한 장미가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며 화려한 지난날을 속죄하는 듯 살기 위해 모두 몸부림치는 늦가을 자연은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떠나가지만 누구라서 오갈 것을 장담하겠는가 2020년 경자년의 험한 시절에 이런 시절이 없었지 근래에도 없었지 우리들의 세상에 경을 칠 이런 악마가 나타나다니 떠나거라 사라지거라 우린 시간을 붙잡고 있질 못하니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아라 10/16/2015 Rockefeller Center 10/16/2015 St. Patrick's Cathedral 10/16/2015 Columbia University 10/17/2..

詩 2020 2020.11.16

나이테/배 중진

나이테/배 중진 무성했던 나무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봄부터 시작하여 벌벌 떨며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여름엔 거칠 것 없이 세상을 덮고 두려움 없이 하늘을 찔렀지요 가을을 어찌 알았을까요 풀벌레 소리 찌르륵거리는 신호를 무심하게 넘기지 않았나 봅니다 지혜의 나무 슬기의 가지 현명한 잎 슬픔을 모를 리 없지요 고통이 있어도 과감한 삶을 택합니다 단풍은 무수히 떨어져 나뒹굴지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천하에 표명하지만 속으론 앙금을 새기겠지요 04/06/2014 New York Botanical Garden

詩 2020 2020.11.14

앙상한 나무/배 중진

앙상한 나무/배 중진 잠깐 화려했던 단풍이 점점 사라지고 앙상함만 남았네요. 봄부터 두려워했던 마음이 갈 곳을 잃어 산더미처럼 쌓인 낙엽의 심정입니다. 밝은 세상이 오길 얼마나 기다렸던가요. 긴 터널을 질주하면서 끝이 보이길 기대했는데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입니다. 언제나 주어진 시간이 아닌데, 세월이 아닌데. 우리 세대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연세 드신 분들의 삶은 정말 초조하구나 똑같은 하루가 아니고 만회할 기회가 전혀 없구나 가을이 가네 무심함만 남았네 정적만 감도네 나무 홀로 하늘을 우러러보네 가을이라는 계절이 불과 며칠 반짝이더니 오늘도 전과 같이 비가 내리는 날로 변하여 더욱더 짧게 만들었습니다. 아쉬움의 연속이고 처참함의 나날입니다. 언제나 밝은 태양은 떠오르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게 될는..

詩 2020 2020.11.12

존경/배 중진

존경/배 중진 일정한 시간에 나타나시는 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목소리가 자상하게 들리고 모두에게 평등하시다 열성이 대단하셔 'Jeopardy'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며 수십 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진정한 프로이시고 최선을 다하신다 남이 나보다 더 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경쟁심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불치의 병과 사투하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으시고 항상 꿋꿋한 모습이다 같은 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셨다 희망을 선물하셨다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었다고 자평하신다 죽음이 두렵지 않고 달게 받겠다고도 하셨다 그가 없는 프로그램을 생각할 수가 없다 11/09/2015 Bronx Zoo

詩 2020 2020.11.11

핑계/배 중진

핑계/배 중진 창밖의 동정을 살폈는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바람이 부는가? 전혀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데 공동묘지 근처를 달렸다 정말 무수히 많은 분이 평화스럽게 누워계셨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연도 많으리라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다 나의 행동에 죄책감 전혀 느낄 수 없다 나는 매사에 최선을 추구하기에 나의 잘못을 언제나 인정할 수 없는데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칠까를 처절하게 절규하지 말라 운명을 탓하기 전에 왜 넌 안되지? 누구에게나 거의 공평하게 악몽은 떨어진다 물론, 나에게도 고통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11/05/2016 The Bronx River Park, Scarsdale, New York

詩 2020 20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