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0 128

옹달샘/배 중진

옹달샘/배 중진 운이 좋은 녀석 우리 집의 샘은 누군가에 의해 파였을 거고 회통 가리는 마당에 즐비했었으며 고집부리다가 혼쭐이 난 녀석은 울며 기어 올라가 누가 볼세라 훌쩍거리다가 통가리 안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잠결에 집안이 발칵 뒤집혀 찾는 소리가 들렸고 개구쟁이 같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깊은 샘이라고 했고 수십 개를 박아 넣었으니 물맛 좋은 생명수가 항상 가득했고 여름에도 굉장히 차가운 우물물이라 우리 손자들은 옹달샘에 가서 물을 길어올 필요가 없어 운 좋은 녀석들인데 가끔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머리 감기 좋은 연한 물이 필요하다고 하셔 물지게를 지고 올라갔던 옹달샘은 물이 많지 않아 독독 긁어야 했고 기다렸다가 또 모아서 길어왔는데 누군가 떨군 보리쌀도 보였고 귀한 쌀도 몇 개씩 있었다..

詩 2020 2020.10.12

이발/배 중진

이발/배 중진 원하지도 않는데 막 자란다 눈치도 없이 멋대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모르고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집에서 혼자 깎아야 하니 매우 답답하다 할 수 있는 것은 남과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라 집에서 될 수 있으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불편하고 어설퍼도 손수 전문가를 흉내 본다 보기 흉한 것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면 어느 정도 가리게 되니 남들이 뭐라고 할 성질이 아니다 모두 엉성한 삶의 연속이요 질을 따질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죽기 아니면 살기의 막가파는 아니고 너무 모나지만 않으면 될 것 같다 남에게 혐오감만 주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다 오늘 보기 이상해도 내일은 그만큼 자라니 괜찮아질 것이요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건강한 삶이면 그것..

詩 2020 2020.10.12

Sleepy Hollow Cemetery/배 중진

Sleepy Hollow Cemetery/배 중진 누가 부르는 것일까 인간들이 공동묘지 쪽으로 떼를 지어 가고 있었다 가을 날씨답지 않게 약간 무더운 기운 하에 간신히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2년 전에 보았던 사슴이 방방 뛰어 내려온다 사람과 군중 사이를 교묘하게 피하며 성난듯한 표정인데 시냇물 가로 달리는 것이 아니고 방금 우리가 달려왔던 도로 쪽으로 겁도 없이 치달린다 누가 저렇게 분노케 하였던가 토요일이라 더 많은 인파가 몰려오니 짜증이 난 것은 아닐는지 앞에서 몰려오는 사람을 피하고 아무렇게나 뒤섞인 대중을 회피하며 들어가지 않아야 할 묘역까지 침투하면서 될 수 있으면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워낙 많아 오래 지체할 이유가 없어 바로 내려와 집으로 향했는데 지나친 공원마다 그야말로 인..

詩 2020 2020.10.11

후회하는 가을/배 중진

후회하는 가을/배 중진 우연히 만난 사람 인연인 줄도 모르고 그리움에 사로잡혀 세월 가는 줄도 몰랐지요 분명 더 좋은 사람도 많았겠지만 제 눈에 안경이라고나 할까요 그저 마냥 좋았습니다 그녀도 싫어하는 눈치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죽자 살자 만났지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우리들의 세상이었지요 그런 시절 있었습니다 평생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때와 지금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지만 삶의 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혼자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녀도 똑같이 그렇게 세상을 탓하며 지내고 있답니다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어보려고도 했지만 순탄하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허공으로 날아갔습니다 항상 아픔이 되었습니다 후회하게 될 줄은 미처 꿈에도 몰랐습니다 10/20/2014 Mohonk, New York

詩 2020 2020.10.09

떨어진 가을/배 중진

떨어진 가을/배 중진 풀벌레는 밤마다 고운 소리로 서로를 끊임없이 찾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바람같이 나타나 낙엽을 밟고 그냥 지나가는가 봅니다 발걸음 소리는 기억하는데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예민할 대로 예민한 심정이고 허망할 대로 허망한 마음이며 야속할 대로 야속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가을은 이렇게 사라지는가 봅니다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싱겁게 끝이 났습니다 단풍잎이 눈앞에서 빙그르르 돌다가 떨어집니다 가슴 아플 정도로 큰 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New York Botanical Garden 10/8/2011 가을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나그네가 되는 것이지요.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들.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냥 나아가고 싶은 심정은 무엇일까요? 삶이 팍팍해서 그런가 싶지도 않고 집에..

詩 2020 2020.10.08

홍시/배 중진

홍시/배 중진 우리 할머니 홍시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는데 올 추석에는 맛을 보실 수 있을는지 저 높은 곳엔 홍시가 많이 달려있겠지만 치아가 없어 오물오물 숟가락으로 후벼 파 드시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남에게 듣기 싫은 말씀을 전혀 하시지 않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분들도 없었던 겸손하신 할머니 가끔 못하시는 술 한잔 드리면 겁도 없이 생각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켜 홍시처럼 발가스럽다고 놀려도 천진난만하게 같이 부여잡고 웃곤 했으며 어떤 때는 겨울에 구하기 어려운 홍시를 애타게 찾는 바람에 손자들 몸 달게도 하셨지요 언제나 새벽에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항상 부지런하신 우리 친할머니 한가위가 되니 둥근 달에서 토끼처럼 떡방아 찧는 모습이 겹쳐 떠오르네 달이 차고 기울듯 옛날의 사랑이 밀려왔다 쓸려가네 할머니처럼..

詩 2020 2020.10.01

무당거미/배 중진

무당거미/배 중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횡단보도 근처 경찰차가 조용하게 건널목을 주시하고 있고 높은 곳의 건물에서 그 경찰차를 살피는 사람이 있었으며 많지 않은 자동차가 질주하는 6차선 도로이지만 양쪽으로 주차할 수 있게 만들어 보통 4차선이다 가끔 그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치여 나는 가급적이면 이용하지 않고 조금 더 올라가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 항상 안전하게 신호를 받아 건너곤 한다 그러나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차가 오는 것이 뻔히 보여도 건너려고 하고 달리던 차도 느리게 걷는 보행자를 마냥 기다리지 못하고 채, 사람이 길을 건너지 않았어도 획 지나친다 무당거미처럼 순간을 기다리는 경찰을 보고 사람이 건너는 것을 확인하면서 달리는 차가 걸렸다 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경고등을 켜고 바로 쫓아간다 예상..

詩 2020 2020.09.30

인연/배 중진

인연/배 중진 처음부터 관심 있는 사람 언제부턴가 좋아하는 사람 보이지 않아 오랫동안 궁금했던 사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나 찾았던 사람 무엇이 변했을까 눈에서 떠나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고 했는데 예전과 똑같은 사랑을 기대해도 좋은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변화에 적응하며 성숙하는 것일까 우리의 목표는 무엇이고 얼마나 같이 서로 도와가며 걷는 길일까 확실하진 않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까지나 영원한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10/21/2015 Quebec City, Canada 예전과 똑같은 사랑을 기대해도 좋은가 예전과 똑같은 사랑을 기대할 만한가 아무래도 좋아하는 사람의 근처에서 오로지 일념으로 그만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詩 2020 2020.09.27

추석/배 중진

추석/배 중진 한가윗날 구름 한 점 없기를 기원합니다 맑아 외롭고도 하염없이 고향 생각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밝혀주었으면 하지요 근심 없고 질병 없으며 풍년과 행복만 보름달처럼 가득하길 바라지요 친구 얼굴이 절로 떠오르고 향수가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내 고향 뒷동산이 마냥 생각납니다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친구가 떨어져 있어도 같은 꿈을 꿀지 둥실둥실 떠오르는 둥근달을 반갑게 맞으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일을 추억할지 달님은 찼다 기울고 고민도 왔다 가나 변함없는 옛날은 멀리 있는 지금도 가까이 있고 알 수 없는 내일도 확실히 부닥치리 10/26/2015 명절 때마다 갈 수 없어 가슴 아프곤 했답니다. 고국을 떠난 자에겐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기도 하지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

詩 2020 2020.09.25

후회막급/배 중진

후회막급/배 중진 폐암으로 투병 중인 연예인이 개 구충제를 복용하며 뛰어난 항암효과가 있다고 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개인적으론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한국에선 인기로 정상을 달리던 젊은이인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했단다 권위자들이 그렇게 많은 실험을 했고 실패를 했는데 단순히 한 명의 기적적인 완치 사건으로 하나뿐인 생명을 담보로 잡고 따라 했단다 삼 개월이 지나면서 추종하는 팬들의 자극적인 격려로 또 하나의 신비로운 현상이 일어나는 듯했는데 허탈하게도 그게 아니었다 지금 그의 심정은 얼마나 황당할까 아예 모르고 운명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지만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처절한 싸움을 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결정에 후회막급하겠지만 조용히 의사의 처방에 따랐다면 좀 더 나은 투병 생활이 되지 않았겠..

詩 2020 2020.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