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0

무슨 사연일까/배 중진

배중진 2020. 10. 21. 03:04

무슨 사연일까/배 중진

 

요사이는 남과의 접촉이 두려운 계절

자신 이외는 신체적으로 거리 두는 암울한 시기

밖에서 돌아와 손을 깨끗이 닦아야 하는 불안한 시절

 

그런데 교정에서 엉킨 남녀가

어렵게 언덕을 올라와 할딱거리며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뿌연 안경을 닦는 순간에

학생들이 다 떠난 초등학교 운동장의 귀퉁이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보였다

 

늦은 시간이라

검은 물체 그 자체였고 

얼굴도 알 수 없었다

 

세상에 떳떳하게 밝히고 싶은 관계는 아닐 터

둘만이 풀어야 하는 슬픈 사랑이리라 짐작하고

정상 퇴근해서 돌아가야 하는 가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혹여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다투기 무엇해

다소 거리가 있는 밖에서 

소중한 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산책을 다시 시작했고

그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남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곳에서

 

잠깐 그들의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당사자인 그들은 영원히 기억되는 순간일 것이다

 

Bronx Zoo, New York 10/2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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