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4 306

이름 대신 조로 불렸던 관광객들/배 중진

이름 대신 조로 불렸던 관광객들/배 중진 40명이 넘는 여행객을 인솔하고 떠나는 관광버스에서 안내원은 처음엔 이름을 불렀었는데 어느 순간 번거로움을 피해 조를 편성하여 24조까지 호명했으며 다음 기착지로 떠나는 순간엔 1조부터 부르기 시작 누가 빠졌는지 확인하곤 했는데 부드럽고 효율적인 면에서는 좋으나 5박 6일 여행이 끝나도 상대방의 성조차도 모르게 되더군요 붙임성이 있는 여성분들은 금세 언니, 동생 따지고 이름도 부르면서 가리는 장벽을 쉽게 없애버렸지만 남성들과 부부 동반한 사람들은 멋쩍어 또는 말을 나눌 수 있는 단짝이 있기에 구태여 벽을 허물지 않아도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배우는 데는 하등의 지장이 없어 예의를 갖추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뱅뱅 돌아 쉽게 융화가 되지 않았기에 아쉬웠는데 헤어지면..

詩 2014 2014.11.23

온실/배 중진

온실/배 중진 때아닌 강추위가 가을이 채 떠나기도 전에 물밀 듯이 밀어닥쳐와 모두 싸매고 싸매느라 정신이 없는데도 다행인 것은 흰 눈이 동반하여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요 뉴욕의 서북쪽에 있는 버펄로에는 무려 3m 정도의 폭설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단다 아침에 들어보니 13명이 눈 치우다 사망했고 일요일에 있을 프로 미식축구 경기도 이미 취소되었다고 하며 각지에서 구조원들이 몰려들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자연의 힘은 엄청남을 다시 일깨우고 온실 속으로 들어가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연말연시 축제일을 맞이하여 장난감 기차 전시회를 보며 신기한 것도 많고 유명한 건물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철로와 교량 터널 등을 보느라 정신이 없어 땀과 습기가 뒤범벅된 줄도 모르고 밖으로 ..

詩 2014 2014.11.23

아버님/배 중진

아버님/배 중진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처음 만났어도 즐겁게 눈과 목인사 나누고 버스에 몸을 싣고 목적지로 향했는데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안내원의 지시에 따르고 협조하며 아무런 불상사 없이 여행 기분에 젖어들었고 약간은 버스에서의 좌석과 식사시간 좌석 배치로 불편함은 있었어도 무리 없이 5박 6일 헤쳐나갔는데 젊고 말쑥한 멋쟁이 서울 아가씨가 혼자 셀카봉을 높이 쳐들어 앞세우고 나이를 아는 것도 아닌데 아버님이라고 대뜸 불러와 공연히 기분이 이상해지고 벌써 그런 위치에 놓였나 생각도 했지만 싫지는 않았으며 친밀한 느낌도 들었는데 여행 막바지 뉴욕에 들어오니 이제까지의 자연환경에서 밀치고 붐비는 밤거리를 밝은 네온사인 찾아 헤매다가 무서우니 같이 다니자고 제안을 해오며 몸을 부딪쳐와 움찔하면서도..

詩 2014 2014.11.22

탱자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배 중진

탱자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배 중진 갈바람에 만물이 요동치지만 탱자나무의 날카로운 모습에 지레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지는 몰라도 탱자나무는 건드리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는 듯 매우 조용한 모습이었으나 앙상한 모습을 보면서 갈기갈기 찢어진 가을바람을 연상하고 동글동글 빛나는 탱자를 살펴보며 가시가 많은 곳에서도 찔리지 않고 빙글빙글 요리조리 피해 탄력 있으면서 탱탱한 모습에 감탄하며 가까이하지는 않는 것은 밭과 밭 사이 또는 밭과 행인이 오가는 길 사이에 가까이 오면 무조건 찌르겠다는 경고를 시골에서 자주 보아왔으며 심지어는 담장으로 이용하는 집도 보았는데 혹여 탱자는 따서 가져간다 해도 잃을 것이 없고 불법으로 담장을 넘어 쳐들어온다면 가시에 찔리는 것보다도 더 참혹한 결과가 기다리니 이상한 바람으로 ..

詩 2014 2014.11.22

무서운 동물의 세계/배 중진

무서운 동물의 세계/배 중진 초등학교 교정에 휴식처를 마련하고 야외용 식탁을 놓은 것은 좋았는데 지나가는 주민들이 때때로 이용하는 것은 보았지만 사나운 매가 청설모를 드시는 장소로 전락할 줄이야 무서운 매의 얼굴이 살기등등하게 보이는가 하면 졸한 청설모의 얼굴과 눈동자가 무표정하게 보이고 입이 열렸으며 제사상에 커다란 돼지머리를 삶아 올려놓고 정성스레 제를 지내는 것이 연상되고 횟집에선 살아있는 물고기가 눈을 껌뻑이는데도 살점을 잔인하게 빼먹기도 하는데 살아있는 동물을 잔인하게 죽여도 죄책감이 없는 야수와 식탁에 올라온 육식 고기를 맛있다고 쩝쩝거리며 씹어먹기도 하고 싱싱한 물고기가 맛이 있고 몸에 좋다고 비인간적으로 말 못하는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며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는 힘센 동..

詩 2014 2014.11.21

골짜기의 가을/배 중진

골짜기의 가을/배 중진 울퉁불퉁한 암석은 오르는 길을 멈추게 하고 크고 작은 돌덩이 물길을 따라 멋대로 앉아있어도 쫄쫄거리는 골짜기 개울물 불평 한마디 없이 여유롭게 터진 곳 있으면 돌아 흘러서 가네 지금은 물이 없어 작은 소리로 들리지만 눈을 감고 앉으면 괴석을 밀치던 굉음 들리는 듯하고 앞다퉈 튀어 올라 하얀 물거품 뿜어내던 괴력에 아름드리나무들 맥없이 꼬꾸라져 내동댕이쳤었지 늦은 가을 단풍이 시시하다 쫑알쫑알 말들이 많아도 떨어져 쌓인 단풍과 물에 섞여 흐르는 잎들이 오름길을 덮어 시건방진 사람의 발목을 다치게 하고 내리막길이 막혀 답답하다고 멀리 돌아가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네 단풍은 화려하게 아름답고 낙엽은 주위와 잘 어울려 공기 맑고 낙엽 냄새 구수하며 흐르는 물소리 정겹고 지저귀는 산새 소..

詩 2014 2014.11.19

낙엽이 가는 곳/배 중진

낙엽이 가는 곳/배 중진 어제는 종일 비가 쏟아지고 오늘은 어제보다 20도 정도 나뭇잎같이 뚝 떨어진 기온이라 그나마 남아 있던 잎들이 휘날려서는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길거리를 사납게 만드는데 사랑했던 나무에서 덜어져 나온 심정 어찌 모르겠느냐마는 평소 생각만 하고 가보지 못했던 곳 이렇게 해서 마냥 쏠려 다니는데 나무는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줬으니 추워지기 전에 너의 갈길 어여 가라고 등을 떠밀지만 막상 떨어져 나와서 갈 곳이 마땅찮다는 투로 서성이며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정든 임 못 잊어 발걸음 옮기지 못하며 애꿎은 길바닥만 걷어차면서 낼 수 있는 소리 다 동원하여 밤낮으로 괴성을 지르다가 겨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겠지 어서 얼른 알 수 없는 사용자2014.11.19 09:17 친구님 안..

詩 2014 2014.11.19

버리는 심정/배 중진

버리는 심정/배 중진 옷장에 가득 찬 옷을 보면서 편하고 좋아하는 옷들만 골라 입었더니 일 년이 흐르고 5년, 10년이 지나갔어도 손 한 번 댄 적이 없는 것이 많아 요사이는 일부로 안쪽에 걸려 있는 것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입어보았는데 셔츠는 볼품없고 규격도 턱없이 작아 억지로 들어가는 것을 입고 스웨터로 가림을 한다 하지만 바지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아 주섬주섬 입어보고 골라 놓았더니 상당했으며 지난 20년 동안 뭐에 홀려 샀는지도 몰라도 이젠 과감하게 버려야 할 물건이라서 잔뜩 쌓아놓으니 아쉬우면서도 홀가분한 마음이라 기분은 새로워졌으며 안쪽을 흘낏 보았는데 빽빽했던 것이 다소 헐렁한 느낌은 들었어도 아직도 새로운 임자를 찾아 나서야 할 것이 많으니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살 이유가 없고 남들이 보..

詩 2014 2014.11.18

얼음판/배 중진

얼음판/배 중진 학수고대하던 얼음판이 얼면 동네 개구쟁이들은 살판이 났고 질서없는 아수라장 개판이 되지만 흥은 해가 서산에 넘어갈 즈음 판이 깨지고 논 15마지기에 물을 대느라 논 임자와 실랑이하길 여러 밤 낮에는 주인이 이겨 물꼬를 따고 밤에는 아이들이 떼로 몰려가 짚단으로 물을 막고 일단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적어도 2월 말까지는 우리들의 운동장이 되니 그 정도의 수고는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눈이 쏟아지면 집 마당은 쓸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모여 썰매와 스케이트 타기 딱 좋게 크게 타원을 그리듯 치워 너나 나나 모여들어 살얼음판같이 위험해도 춥고 갈 곳 없는 농촌에서는 더 좋은 축구판이 없어 고무신을 신고 공을 쫓는 녀석, 운동화를 신고 뛰는 녀석 심지어는 양말만을 신고 괴성을 지르며 내달리는 녀석도 ..

詩 2014 2014.11.18

을씨년스러운 날씨/배 중진

을씨년스러운 날씨/배 중진 낮잠이 없는 사람도 오늘같이 잔뜩 찌푸린 날씨에는 푹 자고 싶은 충동이 들게 햇빛은 보이지 않아 황량함과 쓸쓸함 적막감과 음울함을 주는데 풍성하고 아름답던 가을 나무도 잎을 다 떨어트리고 달랑 몇 개만 남아서 흔들거리고 있어 적나라한 모습이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동면에 들어간다 하니 누가 포근하게 덮어주었으면 싶은데 흰 눈이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2014.11.17 23:08 Woman planting flower pot, 1866 Villa near Perugia, 1870 Elihu Vedder(1836-1923)

詩 2014 201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