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4 306

고요한 밤/배 중진

고요한 밤/배 중진 깡촌의 겨울밤은 일찍 시작되었고 깜깜했지만 무척 이나도 고요한 밤 멀리 교회의 종탑에 큰 별 하나 불을 밝히고 무슨 날인지도 모르면서 빛이 얼굴을 환하게 감싸는 기분이 들었으며 달보다 환한 별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저 기쁘기만 했는데 동쪽의 그 별이 영원히 꺼지지 않길 고대하며 날마다 저녁때만 되면 남모르게 기다리고 불이 밝혀져야 안심하기도 했었는데 그것이 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제부터 성탄절을 알았는지는 정확히 모르나 학교 다니면서 방학을 하는 날짜와 딱 맞아떨어져 본질보다는 잿밥에 더 신경을 썼는지는 모르되 많이 알고 있는 지금은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었으면 yellowday2014.12.24 08:14 예나 지금이나 별은 영원한 동경인것 같습니다...

詩 2014 2014.12.24

Smew/배 중진

Smew/배 중진 좁은 공간에 파도치는 소리가 제법 크게 간헐적으로 들리지만 자연스러운 소리는 아니고 물새들을 위하여 만든 고향의 소리요 암갈색의 암놈은 물장구도 치지 않고 물결도 일지 않게 유리 위에 앉은 듯 눈을 감고 조용하게 떠 있으며 흰색이 더 많은 수놈은 왔다 갔다 하면서 위엄을 부리듯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고 다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간으로 따지면 청소년이랄까 되지 못한 송아지 엉덩이에 뿔이 먼저 난다는 식으로 정신없이 쏘다니고 예의도 차리지 않고 물탕치며 노는데 접영으로 빠르게 나아가다 세상을 호령하듯 깃을 치고 대가리를 처박고 분탕질하다 언제냐 싶게 얌전한데 눈이 보여야 까만 속이라도 짐작하겠는데 까만 털에 검은 눈동자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제 세상인 듯 설치고 다녔지만 귀엽기도 하고..

詩 2014 2014.12.24

信天翁/배 중진

信天翁/배 중진 어미 새의 나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워 날마다 꿈을 꾸는 새끼 신천옹은 눈만 뜨면 몸을 흔들고 떨구고 날갯짓하며 어른 흉내를 내지만 준비되지 않았고 힘이 없어 뒹굴고 처박고 솟아올랐다가 둔탁하게 떨어지는데 백사장으로 떨어지면 희망이라도 있지만 재수 없는 앨버트로스는 잔인한 상어가 유영하는 바다로 떨어져 긴 날개 때문에 오히려 목숨을 잃기도 하지요 퍼덕거리며 안간힘을 쏟지만 금세 힘이 떨어지고 발버둥 치며 이빨만이 보이는 상어의 아가리를 피하려 하여도 사나운 파도가 덮침과 동시에 장애가 되어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파도는 언제나 그렇듯 무심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렁이며 짓쳐오지요 무한히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쉽게 얻는듯했으나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고 거칠 것 없는 하늘이..

詩 2014 2014.12.23

에델바이스/배 중진

에델바이스/배 중진 에델바이스 꽃처럼 하얀 눈이 입술에 떨어져 녹을 때 불현듯 생각나는 예쁜 소녀 간밤 꿈에서 청순한 모습 보았는데 희뿌연 하고 추운 날씨에 흰 눈은 예상하지도 않았으며 간혹 태양이 빛을 발하는데도 쏟아지는 것이 아름답고 즐거움을 주어 점심을 먹으면서도 밖으로 온통 시선이 쏠려 흘리는 것도 모르고 뭘 맛있게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욕정을 채우듯 씹어 삼켰으며 선물로 받았던 에델바이스가 자꾸 떠오르네 순수했던 시절의 깨끗한 마음이 담긴 유리 상자 속의 에델바이스 비록 밖으로 나오지 못해 향기를 풍기진 않았지만 고이 담아 묵시한 사랑한다는 마음 어찌 모르겠는가 마음을 접은 지 오래였지만 아직도 간간이 나타나는 소녀 흠모하는 마음 떠나지 않고 꿈에 나타나며 아름다운 자태 사라지지 않고 수시..

詩 2014 2014.12.23

잘못된 상봉/배 중진

잘못된 상봉/배 중진 따스하고 평온한 방에 느닷없이 꿀벌보다 덩치가 큰 벌이 창가 높은 곳에서 서 있는 몸을 향하여 쏜살같이 내려꽂히는데 엉겁결에 놀라 피하긴 했어도 뒤쪽 옷에 붙어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어 터느라 혼비백산했으며 더는 보이지 않아 우발사건이었지 싶은데 남침인지 북벌인지 헤아리기는 어려워도 그동안 춥고 따스한 날이 반복하여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길 여러 번 해괴한 일을 금세 잊어버렸는데 어제 창문을 열면서 오리무중이었던 사건이 마침내 해결되었는데 벌은 죽은 듯이 창문과 방충망 사이에 놓여 있어 핀셋으로 집었더니 발만 힘없이 움직이네 이제껏 추위에도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었으나 적과 동침할 수도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날개가 건강할 때 찾아내 날려보내지 못함을 죄스러워하며 그래도 자연이 품..

詩 2014 2014.12.20

호랑이/배 중진

호랑이/배 중진 시베리아 호랑이는 같은 종에서도 으뜸간다 하여 왕범이라고 했고 사납고 무섭기는 둘째가라 하면 서러워할 맹수가 한정된 울에 가두어져 행동반경이 극히 좁아져서 갔던 길 돌아서서 또 반복해서 오는 것을 보고 보는 사람이 답답하기도 했는데 울타리 쪽으로 한참 시선을 주면서 탈출을 모색하기도 하고 나무로 올라가 하늘로 치솟고 싶은지 아름드리나무를 부둥켜안고 용을 쓰더니 제풀에 너부죽이 주저앉아 혀를 날름거리네 인간이 있는 쪽은 달랑 유리로 막아 놓았는데 먹기 좋은 통통한 사람이 다가서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없이 시큰둥한 눈초리인데 일대일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가끔 한 맺힌 낮은 음성으로 포효하여 딴 동물들을 긴장하게 하고 저변에 깔린 슬픔이 가슴에 와 닿아 안쓰럽지만 그대가 있어야 찾는..

詩 2014 2014.12.19

사람도 좋아할 리가 만무지/배 중진

사람도 좋아할 리가 만무지/배 중진 남들이 불쾌감을 느끼거나 싫어하는 짓은 장소를 가려서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원죄를 저지르고 가릴 것은 가리면서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가릴 줄 모르고, 생긴 그대로 걸친 것 없이 나다니는 동물들은 예의를 차릴 줄 모르고 아무 데서나 용변을 보는데 줄을 지어 따라가던 사슴이 앞에 가던 사슴이 갑자기 환약을 쏟아내니 용서할 수 없다는 투로 뿔로 들입다 들이받는다 하필이면 뒤따라오던 사슴의 코앞에서 검은 환약을 무작위로 떨어트리니 잘, 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고 즉결심판을 받고 줄행랑을 치는데 가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사회에서는 도덕관이 없는 것인지 법 집행을 당하기 전에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유와 평등만을 외치고 파괴를..

詩 2014 2014.12.19

덩칫값도 못 하는 사슴/배 중진

덩칫값도 못 하는 사슴/배 중진 낙타 같은 목을 가졌으나 낙타가 아니고 소와 같은 발굽을 가졌으나 소는 아니라고 했으며 당나귀 같은 꼬리를 가졌으나 당나귀는 더욱 아니라 했고 사슴 같은 뿔을 가졌으나 사슴도 아니라는데 한낮에는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 눈을 감고 또는 눈을 뜨고 되새김질하던 Pere David's Deer가 저녁때가 되니 으슬으슬한지 햇볕이 남아 있는 곳으로 몰려가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으로 가려면 백조 한 쌍이 또한 생활하는 곳을 지나쳐야 하는데 나팔수가 따로 없게 날개를 퍼덕거리며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니 눈치 보며 뛰어서 지나가거나 아예 빙 돌아서 가야 하며 그것도 아니면 중간에 무리에서 떨어져 오도 가지도 못하게 되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앞을 지나갈 때 곁눈질하는 것을 보고 경계를 게..

詩 2014 2014.12.18

덩치가 커서 슬픈 날짐승이여/배 중진

덩치가 커서 슬픈 날짐승이여/배 중진 고요한 연못에 오리들이 화기애애하게 몰려다니는데 느닷없이 거대한 날짐승이 연못에 도착했고 풍비박산 오리들의 놀란 가슴에선 꽥꽥거리는 괴성이 쏟아지고 왜가리가 앉은 곳으로 수백 마리가 물밀듯 몰려간다 캐나다 구스가 앞장서 적을 퇴치하려는 듯 물려고 덤비니 본의 아니게 평화를 깨트렸음을 자각한 왜가리는 멈칫 물러서서 일당백 수적으로 불리하여 물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뻣뻣하게 한참 서 있네 목이 말라 날아왔건만 물 한 방울 얻어먹지 못하고 도망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으며 옮기는 곳마다 오리들이 기를 쓰고 전함같이 새까맣게 몰려가면서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울분을 토하려는 듯 씩씩거리네 멀리에서 날아와 필요한 음식을 훔쳐먹고 안전하게 멋대로 놀다가 위협을 하듯 위압적인..

詩 2014 2014.12.18

작은 소망/배 중진

작은 소망/배 중진 사랑의 계절은 또 돌아왔지만 어쩌다 불운하여 남들보다 가진 것이 적고 먹을 것도 풍족하지 못하여 사랑의 선물 받기 원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자꾸 어른거려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어른으로서의 죄책감을 느끼며 추운 겨울 어디 가서 무슨 짓이라도 하여 얻어와 천사같이 해맑은 웃음 보는 것이 소원이지만 작은 소망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여 카드에 원하는 것을 소심하게 적었으며 실현 가능성이 부족하지만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했고는 잊었는데 카드는 높이 날아 성당의 작은 나무 위에 내려앉았고 따스한 성도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수북이 꼬친 카드를 따다가 원하는 사연 눈물로 읽고 큰돈이 들지 않는 선에서 나름대로 사랑의 선물을 준비하여 나무 근처에 산더미처럼 쌓아..

詩 2014 201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