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3 431

동생을 보는 줄 알았는데/배 중진

동생을 보는 줄 알았는데/배 중진 그 아이들은 눈밭에서 놀기 좋아했고 넘어지고 뒹굴고 어느덧 눈사람이 되어가다가 자기와 닮은 눈사람을 세워놓고는 입은 넓게 눈도 크게 코는 빨간 거짓말을 밥 먹듯 했기에 빨갛고 길게 머리엔 쥐어박기 좋은 털모자를 씌웠는데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견디지 못하고 옆으로 나동그라져 볼품없이 녹고 있어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저려 흰 눈이 내리기만 손꼽아 기다려 옆에다 동생인 듯 또 하나 세우려 했더니 눈이 내리는 즐거움도 잠시 쌓인 눈은 너무 무겁고 축축하여 몸뚱어리조차 굴려 만들 수도 없어 이를 어쩐다 동생을 볼 줄 알았는데 그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어서 흰 눈이 내릴 날을 또 기다려야 하겠네 오솔길2013.12.16 09:30 안녕하세요 ~ 배중진님~ 건강에 유의하시고 우울한 생..

詩 2013 2013.12.16

흰 눈을 좋아하더니/배 중진

흰 눈을 좋아하더니/배 중진 흰 눈을 좋아하더니 이 세상에서 마음껏 즐기다가 흰 눈이 멎으니 흰 눈과 같이 조용히 떠난 사람 긴 여정을 마치고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누렸기에 축복 속에서 은총의 부러움을 받으며 떠난 사람 부질없는 것은 눈과 같이 떨어트리고 사랑을 받으며 인간세계 이별은 서러워도 흰 눈과 같이 조용히 떠난 사람 흰 눈과 같이 원하는 곳으로 질주하고 흰 눈과 같이 아무 때나 나타나고 흰 눈과 같이 더러운 것을 덮었던 사람 흰 눈이 내리면 그대인 듯 반기리라 눈/윤동주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 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쌀독 인심/배 중진 옛날에는 흰 눈이 밤사이에 탐스럽게 내리곤 했었지요 일기예보가 따로 없었고 일기예보라는 것이..

詩 2013 2013.12.16

생때같은 우산을 버려야 했던 심정/배 중진

생때같은 우산을 버려야 했던 심정/배 중진 눈이 내리는 것을 온종일 바라다보기만 하다가 밤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우산을 쓰고 걸어보니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튼튼하고 넉넉한 새 우산은 결국 집으로 들어오질 못했네 허리케인에 시달리는 palm tree같이 홀라당 뒤집혀 사람까지 당황케 했으며 보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 막무가내로 길게 뻗대기만 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 집은 멀리 있지 않았기에 접히지도 않는 것을 버려야 하는 심정 집을 나설 때는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 꿈도 꾸지 못했는데 막상 버리려고 하니 쓰레기통에 들어가지도 않아 억지로 우산답게 펼쳐보니 살만 보이는 것이 반이나 되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으며 바람을 거슬렸는지 비와 싸라기로 얼굴은 따갑고 옷은 금방 젖었으며 우산을 버..

詩 2013 2013.12.15

철새/배 중진

철새/배 중진 한 떼의 기러기들이 소리 높여 도시 위를 나는 것은 평소 반겨주었던 호수가 꽁꽁 얼고 눈으로 덮여 배고픔을 달래며 잘 찾지 않던 지역을 황급히 빠져나가는 소리요 놀란 비둘기들이 앞서 날아가나 눈보라와 별 차이도 없어 보이네 눈발이 휘몰아쳐도 성당의 종소리는 정오를 알리고 계속 연주하는 타종소리는 높이를 조절하며 들렸으나 눈을 치우는 소리와 자동차들이 질주하며 내는 소리에 이어졌다 끊어졌다 결국은 폭설 속으로 사라져 들리지도 않네 새벽부터 쏟아지는 눈은 24시간 계속 내린다는 예보이고 지금은 다소 소강상태이지만 오후부터 더 내린다 했고 사람들은 현재까지 쌓인 눈을 치우느라 고생이지만 기다렸다 한꺼번에 치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겠지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괘종시계가 겸연쩍게 한번 울리는 것은..

詩 2013 2013.12.15

하얀 소녀/배 중진

하얀 소녀/배 중진 오늘같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으며 시름시름 앓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헝클어진 잠옷을 입고 비틀비틀 걸음으로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으며 마음을 주었으나 마음을 받지 않더니 오늘같이 하얀 눈이 쏟아지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이 창백하게 보였으며 구석구석 밀려 떠도는 눈송이 선하고 얼크러진 바람을 업고 허둥지둥 날아가도 얼마나 날을 수 있을까 안절부절못했으며 사랑을 주었으니 마음이 엮였구나 헐크러진 잠옷을 입고 헝크러진 잠옷을 입고 헝클어진 잠옷을 입고 아주 반갑습니다. 야후가 그렇게 되고 나서 어디선가 활동하시고 계시겠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답을 주셨네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예전과 같이 활발하게 활동은 하지 않지만 나름..

詩 2013 2013.12.14

어느 소녀의 아픔/배 중진

어느 소녀의 아픔/배 중진 앳된 소녀가 조심스레 청년을 훔쳐보길 몇 번 하면서도 마주하길 꺼리다가 아주 햇볕이 따스한 날 마루의 기둥에 의지하여 쓰러질 듯 걸터앉아 수줍은 미소를 지으나 생기가 없어 보였고 얼굴이 백지장 같았으며 말을 삼가고 물끄러미 마당만 바라보다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자기소개를 하는데 서울에서 친척 집이라 내려왔으며 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기에 요양차 내려왔단다 어머니와 같이 왔는데 지금은 홀로 음식을 조심하며 얼마 동안 있을 예정이란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 음악감상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기는데 나이도 비슷했으며 좋아하는 것과 사랑도 알고 있었으나 정작 듣는 사람은 오히려 감정이 둔하여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먹서먹하게 지내다 어느 날 말없이 ..

詩 2013 2013.12.14

알 수가 없어요/배 중진

알 수가 없어요/배 중진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 추운 날씨에 물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고 보면 볼수록 추워서 움츠러들었답니다 알 수가 없어요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르는 갈매기들이 있다 생각을 했는데 무리를 지어서는 계속 하늘로 날아 올라갔답니다 소실점, 구심점을 생각하며 추적을 했는데도 결국은 놓쳤지요 알 수가 없어요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카메라도 잡지를 못했지만 분명 올라가는 것을 보았기에 언젠가는 내려오겠지 생각하며 뭔가를 찾으려 그쪽으로 계속 주시를 했답니다 알 수가 없어요 반짝이면서 내려오는가 싶었는데 일렬로 파도 위를 닿을까 말까 날아가는데 금방 날개를 쉴 것 같아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더군요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같이 끝도 없이 날아갔답니다 알 수가 없어요 ..

詩 2013 2013.12.14

불행한 사고를 피하는 것을 목격하고/배 중진

불행한 사고를 피하는 것을 목격하고/배 중진 놓여있는 철길을 잘 따라가던 열차가 탈선하니 구경꾼들이 몰려 현장 근처는 아수라장을 이뤘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 같은 출퇴근의 불편을 겪어야 하며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분들에게 명복을 빌고 크게 다치신 분들이 악몽을 떨구고 힘차게 일어섰으면 하는데 선행을 했건 악한 짓을 했든 간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앙인데 2014년도 신형 자동차를 뽑아 놓고 심한 기침 감기로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모셔놓은 지 벌써 열흘이 지났건만 열차사고가 가까운 곳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서 자동차 내부가 낯설고 기계조작이 좀 서툴지만 고속도로를 질주했고 볼 것 다 보고 늦은 시각에 현장을 떠나며 어둡기 시작한다 여겼는데 겨울에는 금방 깜깜해져서 서툰..

詩 2013 2013.12.13

裸木은 똑같다/배 중진

裸木은 똑같다/배 중진 나란히 서 있는 헐벗은 나무를 보면서 차이점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안에서는 정신없이 물기를 빨아들이고 그 결과 여린 잎이 나오는 시기가 다른데 건강하고 생기발랄한 나무는 이른 봄에 적응도 빠르고 추위에도 강하지만 초췌하고 가냘픈 나무는 날씨의 변덕에 생사존망이 걸려 남이 푸를 때 살며시 안타까움으로 시작해도 여름에는 표시가 나지 않지만 가을의 찬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면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갈 길을 알아 덜된 나무는 일찍 나뭇잎을 떨어트리며 살길을 찾는다 이웃은 아직도 정정하고 아름다움이 한창인데도 다 떨구고 앙상한 모습으로 혼자 떨어 애처롭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체가 살아남지 못하기에 서럽지만서도 그렇게 하길 수십 년 그렇게 변변찮아도 찾아올 새는 너부죽이 앉아 날개를 고치..

詩 2013 2013.12.12

얼음 같은 침묵 속으로/배 중진

얼음 같은 침묵 속으로/배 중진 눈은 뚝 그치고 사방은 꽁꽁 얼어갔으며 추위로 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눈꽃을 언제 또 보랴 싶어 머리카락까지도 칭칭 동여매고 발목 이상 덮는 구두를 신고 조심조심 눈길을 걸으니 역시 미끄러워 신경 쓰이고 위태위태하다 싶어 차라리 눈 위를 걷는 것이 안전했으며 얼음을 밟지 않으려 노력했다 밤은 깊어 얼음 같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낮과는 대조적으로 검지만 맑은 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거렸으며 달님도 환한 모습으로 먼 길 시원스럽게 달려가고 있었다 눈은 뚝 그치고 사방은 꽁꽁 얼어갔으며 추위로 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눈꽃을 언제 또 보랴 싶어 머리카락까지도 칭칭 동여매고 발목 이상 덮는 구두를 신고 조심조심 눈길을 걸으니 역시 미끄러워 신경 ..

詩 2013 201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