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3 431

쌀독 인심/배 중진

쌀독 인심/배 중진 옛날에는 흰 눈이 밤사이에 탐스럽게 내리곤 했었지요 일기예보가 따로 없었고 일기예보라는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으니 경험적으로 하늘 우러러보고 먼 산 바라보며 여러 자연적인 징후를 살피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밤손님같이 몰래 다녀가고 여우같이 살짝 꼬리를 감추고 올빼미같이 눈부셔 눈을 감아야만 했었던 흰 눈 광에는 쌀이 뽀얀 모습으로 독에 가득했으나 어머니만 아시는 비법으로 마무리하셔 누가 쌀을 축냈는지 알 수 있었으며 눈이 내리면 덩달아 광에서 인심이 나셨는지도 모르지요 옛날에는 누구나 흰 눈이 밤사이에 쌀같이 토광에 잔뜩 쌓이길 꿈꿨으니까 옛날에는 누구나 흰 눈이 밤사이에 쌀같이 토광에 잔뜩 쌓이길 꿈꿨었지요 쌀독에서 인심 난다.

詩 2013 2013.12.24

맹맹이 콧구멍/배 중진

맹맹이 콧구멍/배 중진 통조림같이 꽉 막혀 질식할 것 같고 맹맹이 콧구멍 같아 답답하게 생겼으며 닭이 먹이를 헤집듯 끊임없이 파헤치고 머리를 숙이면 까만 머리카락만 보이는 사람 미사 시간에 남들처럼 조용하게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도 아니고 고개를 숙이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내고 있으니 진도를 못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진행절차 자체를 모르는 듯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그 많은 시간 집에서 무얼 하다가 왔는지는 모르지만 성당에 내는 성금도 미사 중에 check의 공간을 메꾸는 사람 그녀와 짧은 시간 만남에도 이렇게 답답해서 쩔쩔매는데 그녀와 같이 사는 사람은 오죽할까 생각하여 옆 사람을 살피면서 눈을 감고 경청을 하든지 아니면 신부님을 주목하면 좋으련만 자기 하는 일에만 전념..

詩 2013 2013.12.23

님비(NIMBY)/배 중진

님비(NIMBY)/배 중진 오늘 날씨가 따뜻하니 벌이 어디선가 기어 나와서 더듬이를 움직이며 방충망을 오르락내리락하길래 그동안 인간한테 들켜 집 잃고 차디찬 곳에서 벌벌 떨었겠지만 월동준비를 제대로 하려고 성급하게 나왔던 모양이더군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잔혹한 암시를 주기 위하여 핀셋으로 집어서는 방충망 밖으로 떨궜더니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 힘차게 날아 사라졌으나 미안하게도 빌미를 줘 다시 다른 창틀도 정밀하게 조사하여 일자로 길게 눌어붙은 보금자리를 털어냈는데 벌들은 어디로 갔나 보이지는 않더군요 아무래도 금속보다는 땅이나 다른 곳이 더 따뜻함을 미물이지만 이미 터득하고 있었겠지요 기온의 차가 심한 요즈음 인간도 견디기 어려운데 집 잃고 쫓겨났으니 동지팥죽을 끓여 악귀를 쫓는다는 생각은 않지만 불행하..

詩 2013 2013.12.20

예쁜 눈사람을 만들려고 했는데/배 중진

예쁜 눈사람을 만들려고 했는데/배 중진 남들은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몰라도 그 이후 또 흰 눈이 내렸답니다 우린 신이 나서 잔디밭에서 뒹굴며 마음껏 놀다가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눈사람을 만들려고 눈을 뭉치기 시작했으며 멋진 남동생과 여동생을 나란히 세우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푸석푸석하고 쉽게 흩어져 아예 손아귀에도 들어오지도 않았지요 실망을 거듭하면서 눈이 뭉쳐질 때까지 예쁜 동생은 며칠 더 기다려야 하겠네요 날씨가 금방 변하는 지역이더군요. 화창했는가 싶더니 금방 눈발이 떨어지곤 하여 더 늦게 오후의 teatime까지 지체하며 마음껏 즐기려 했지만 어둠도 두려워 서둘러 떠나야만 했던 산속의 신비함이었지요. 눈사람이 의젓하면서도 미소를 짓게 합니다. 눈이 서너 차례..

詩 2013 2013.12.20

설원에도 질서는 있고/배 중진

설원에도 질서는 있고/배 중진 흰 눈이 마음대로 떨어졌기에 설원에 있는 길과 모든 것을 덮는 줄 알았는데 하얗게 무식한 사람은 그런 곳에도 보이지 않는 길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마음껏 울퉁불퉁하게 구두발자국을 남겼다가 얼굴 창피한 줄 뒤늦게 알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시공간을 이미 초월했으며 유명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눈길을 걷다 보면 걷는 것이 어렵고 발도 빠지니 앞서 간 사람이 만든 발자국을 따라 걸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아, 이런 곳에도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었고 Cross Country Ski track을 밟아서는 안 되는데 씩씩하게 자연에 도취한 체 멋대로 걸어 불편을 초래했으니 혹여 이곳을 지나가는 skier가 불평한다면 법과 질서없이 자연스러..

詩 2013 2013.12.20

보름달은 무심하고/배 중진

보름달은 무심하고/배 중진 보름이었지만 늦게까지 눈이 내렸기에 아예 하늘도 쳐다보지 못했었는데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살핀 후 서쪽 창가에 뭔가 밝은 것이 걸려 있어 무심코 쳐다보니 이웃집 지붕을 막 넘어가는 무심한 보름달이었지요 고향이 그리우면 넋을 빼앗기듯 바라보고 어머니가 생각나면 뚫어지게 살폈는데 요사이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는지 아니면 눈 오는 날이 많아서였던가 무심한 나날이었는데도 달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가던 길 가고 있었지요 따라오는 사람이 있건 없건 간에 말입니다 흰 눈으로 말갛게 씻은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고 기온이 급강하했는데도 맑고 깨끗했으며 춥지도 않은가 덜덜거리지 않고 빠른 걸음이었지요 오솔길2013.12.20 06:41 안녕하세요 ~배중진님~ 시와 고운 풍경사진 잘 보았습..

詩 2013 2013.12.19

꽁꽁 얼었으니/배 중진

꽁꽁 얼었으니/배 중진 춥다 춥다고 말들을 하더니 기러기들도 군대 제식훈련을 하듯 이쪽으로 열을 지어 날아가고 저쪽으로 오를 맞춰 날아가면서 울부짖네 먹을 것이 저 물밑에 있으련만 추위로 얼어붙어 찾을 길이 막연하고 갈팡질팡 살길을 찾지만 세밑의 혹독한 날씨는 녹록하지 않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갈 걸 후회한들 이제 와서 잡은 자리 박차기도 뭣하여 주위를 맴돌고 하기를 여러 번 하다가 급기야는 사나운 매가 빙빙 도는 곳을 골랐는데 매가 먼저 그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아니면 매는 지혜롭게 가여운 작은 새들이 물가 찾을 것을 미리 알고 매복을 서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매서운 동물의 세계는 방심할 틈새를 주지 않는다 열을 맞춰 지나가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호수와 강이 더 얼어붙었으며 그 위에..

詩 2013 2013.12.18

몇몇 친구와 같이 갔던 곳/배 중진

몇몇 친구와 같이 갔던 곳/배 중진 몇몇 되지도 않는 친구들이 자꾸 곁을 떠나기만 하고 새롭게 사귀는 친구는 까탈스럽기만 하여 정이 가지 않는데 몇몇 친구와 같이 갔던 곳을 그리움이 북돋아 사진만 들여다보면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도 없고 몸이 불편하여 말도 없었는데 저 잔잔한 물결이 호수가 살아있음을 이야기하듯 사납게도 거칠게도 몰아붙이지 않지만 은빛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조용한 눈빛에서 젊었을 때의 질주를 왜 유추하지 않을 수 있으랴 친구는 떠나도 그가 갔었던 곳은 멀쩡하게 남아있고 그때와 별 차이 없이 바람불면 부는 대로 눈이 오고 비도 내릴 것이며 시간은 흘러 똑같은 계절도 다시 찾아올 테고 남아있는 사람이 가끔은 좋았던 시절 다시 맞을 수 없어 한숨을 쉬겠지만 그도 저도 아니라면 호숫가 작은..

詩 2013 2013.12.18

눈이 내리니 생각나는 사람/배 중진

눈이 내리니 생각나는 사람/배 중진 벌써 그립습니다 임의 영혼은 떠났어도 육체가 안치된 관은 오늘 묻히는 날 죽어서도 여행하듯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갔고 그곳에서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식을 거행하는데 차마 그곳까지는 따라갈 수 없어 슬픔에 잠겨도 마음인들 못 갈 곳이 어디 있겠는지요 눈을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금세 눈으로 변해 서러워하는 친구들을 위로하려고 저렇게 소리도 없이 가라앉지 싶었지요 언제나 따스한 미소를 지었기에 저 흰 눈도 나의 품에 포근히 잠들 테니 멋진 곳에서 마음껏 즐기시구려 2013.12.18 01:41 Mohonk, New Paltz, New York 2000 2002 2004 10/27/2010 10/22/2012 최근에 들려오는 소문에는 virus가 퍼져 일주일 정도 문을 닫았다고..

詩 2013 2013.12.18

내 몸은 내가 지켜야/배 중진

내 몸은 내가 지켜야/배 중진 올해는 뜻하지 않은 기침 감기를 두 번씩이나 호되게 앓았고 급한 마음에 의사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마음대로 직접 연결이 되지 않아 참을 만큼 참다가 홧김에 간호사를 문책하며 시정을 요구했었는데 그런 시간도 흘러갔고 안정을 되찾고 보니 너무 닦달하지 않았나 하는 죄의식도 있었으며 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도 않았으며 보복을 하면 어쩌나 염려가 되었지만 그들이 행정 실수를 저질렀으니 닥치고 보자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눈치를 보았는데 두 명이 따라 붙으며 방으로 안내해서 겁이 났으며 벌써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덜컹하면서도 잘, 잘못을 묻지도 않고 덮었는데 가르치고 있다고만 설명하지 후임자인지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새로 온 간호사의 전문성이 턱없이..

詩 2013 201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