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3

흰 눈을 좋아하더니/배 중진

배중진 2013. 12. 16. 07:51

흰 눈을 좋아하더니/배 중진

 

흰 눈을 좋아하더니

이 세상에서 마음껏 즐기다가

흰 눈이 멎으니

흰 눈과 같이 조용히 떠난 사람

 

긴 여정을 마치고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누렸기에

축복 속에서

은총의 부러움을 받으며 떠난 사람

 

부질없는 것은 눈과 같이 떨어트리고

사랑을 받으며

인간세계 이별은 서러워도

흰 눈과 같이 조용히 떠난 사람

 

흰 눈과 같이 원하는 곳으로 질주하고

흰 눈과 같이 아무 때나 나타나고

흰 눈과 같이 더러운 것을 덮었던 사람

흰 눈이 내리면 그대인 듯 반기리라

 

 

 

 

 

 

 

 

 

 

 

 

 

 

 

 

 

 

 

 

 

 

 

눈/윤동주

지난밤에
눈이 소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 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쌀독 인심/배 중진


옛날에는 흰 눈이
밤사이에 탐스럽게 내리곤 했었지요

일기예보가 따로 없었고
일기예보라는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으니

경험적으로 하늘 우러러보고 먼 산 바라보며
여러 자연적인 징후를 살피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밤손님같이 몰래 다녀가고
여우같이 살짝 꼬리를 감추고
올빼미같이 눈부셔 눈을 감아야만 했었던 흰 눈

광에는 쌀이 뽀얀 모습으로 독에 가득했으나
어머니만 아시는 비법으로 마무리하셔
누가 쌀을 축냈는지 알 수 있었으며

눈이 내리면
덩달아 광에서 인심이 나셨는지도 모르지요

옛날에는 누구나 흰 눈이
밤사이에 쌀같이 토광에 잔뜩 쌓이길 꿈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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