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9 137

만리포/배 중진

만리포/배 중진 꿈에 그리던 만리포를 갔는데 고교 시절의 그 만리포가 없었다 바다 쪽이 육지가 되었고 육지 쪽이 바다로 보여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이 지긋하신 분에게 여쭈어보았다 인천으로 가던 연락선을 어디에서 탔었느냐고 저쪽이라고 하면서 가리킬 때 나는 우리에게 마지막 떨이로 상한 조개를 팔던 아주머니가 머리에 이고 오시는 정경이 눈에 선했다 그러면서 방향감각을 되찾았고 우리가 천막을 쳤던 곳을 아련하게 보았지만 그때의 소나무와 깨끗한 모래언덕 그리고 흐르던 맑은 물은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더 자세하게 기억을 더듬고 싶었지만 일행도 있고 아픈 기억을 들춰내기도 싫었다 상한 조갯국을 끓여 먹고 비가 부슬 내리는 밤중에, 밤새 설사하고 구토하고 배를 움켜쥐고 오한에 떨던 처참한 몰골 인천..

詩 2019 2019.04.15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배 중진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배 중진 고향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어디에서조차 아늑한 느낌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나와 연결된 기분이다 미국에서는 전혀 체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항상 긴장하고 다니며 조심스러워 했는데 말도 잘 통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했다 오늘 계량기 검침하러 들어온 사람도 그렇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싹싹하고 예의가 바르다 가친의 집이지만 계량기가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모르는데 가친의 한 말씀에 뒤꼍으로 들어갔고 1월, 2월 전기료가 터무니없이 많이 나왔다고 불평하니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다음 달의 예정된 요금까지도 고분고분 답해 주었다 아무래도 나는 한국 사람인가 보다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고향에 오니 낯선 것도 금세 익어갔다 동..

詩 2019 2019.04.15

자목련/배 중진

자목련/배 중진 양지쪽의 날씨가 여름 못지않은 오후 가친과의 대화는 끝이 없어라 농촌이라 시간도 움직이지 않고 적막감만 무서우리만치 드리운 곳 마루 끝에 앉아서 태양이 움직이는 대로 볕을 찾아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 벌써 저만치 마루의 중간지점 불편하신 노구를 끌고 다니시느라 문지방이 반질반질하다 어제 하신 말씀 또 하실 때도 있지만 처음같이 귀를 쫑긋하니 답답하신 속이 다 풀리시고 신이 나셨는가 보다 목소리도 점점 커지시고 오랜만에 찾아온 제비도 지지 않는다 참새들은 처마 밑으로 제집인 듯 마음껏 들락날락하면서 양철지붕 위에서조차 소리를 내어 누가 찾아온듯한 느낌이다 수돗가의 자목련도 미소짓느라 꽃잎이 벌어졌다 2019.05.08 21:56 자목련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답니다. 제가 없는 동안 고향을 지키..

詩 2019 2019.04.15

장례/배 중진

장례/배 중진 친구 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동생은 이틀 밤이나 새우고 화장까지 치르는 과정을 다 지켜보고 영면하는 가족묘지까지 따라갔다 온 모양이다 미국에선 살짝 얼굴만 내밀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장례식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전부이지 싶은데 살아있는 사람 우선이 아니겠는지 예의는 차리데 가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겠는지 부부가 떨어져서는 잠을 자지 않는 사회라서 밤을 새우면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다음날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현실에 맞지 않는 사회제도가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가족과는 영원한 이별이라 섭섭하지만 하느님 앞에 나아가니 그렇게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랄까 죽음에 대해서 어쩌면 우리보다 더 초월한 인생관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2020.05.11 08:02 김현호 동생 김강호 부인

詩 2019 2019.04.15

할미꽃/배 중진

할미꽃/배 중진 한식이라 조상님 묘에 참배하는데 할미꽃이 할머니 묘의 봉분 정수리에서 활짝 웃고 계셨다 큰소리 한 번 치지 않으시고 항상 손자들만 보면 좋아하시던 할머니 우리가 왔다고 내려다 보고 계셨다 외로움 중에서도 반가우신가보다 굽은 허리로 고생하셨는데 지금도 착 구부리신 꽃을 보니 할아버지보다도 할머니가 우리를 맞이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어 임을 뵈온 듯 인사를 드렸다 2021.03.03 22:28 저렇게 한국을 연상시키는 할미꽃은 미국에서 볼 수 없었답니다. 비슷한 것은 있는데 영 영감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2019년 한국에 갔을 때 할머니 산소에서 아름다운 할미꽃을 발견하면서 할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때가 4월이었는데 봉분의 정상에 딱 피어 손자의 방문을 반기고 있었지요. 멋진 시간이 되..

詩 2019 2019.04.15

제비/배 중진

제비/배 중진 지지배배 하늘이 시끄럽습니다 귀에 익은 소리 반가운 소리 고향의 소리 행운의 소리 봄날의 소리 드디어 울려 퍼졌습니다 4/11/2019(음력 3/7) 날이 좋았던 날이었지요 가친의 옷을 다 빨아 너니 바람에 힘차게 펄럭입니다 여유로움 한가로움 시간이 멈춘 오후 이웃집 가친의 말동무 아저씨까지 합세하여 일본강점기 6·25동란 시절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년대 등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즐겁게 말씀하십니다 지지배배 쌕쌕이 같이 여러 마리가 편대비행을 하는 것이 그들은 매우 분주한 모습입니다 아마도 저 중에 우리 집에 집을 지으려는 것도 있겠지요 농촌이라 매우 바쁜 시절이 도래했고 저들도 새끼를 쳐서 같이 잘 지내다가 추위와 함께 사라지겠지요 봄과 같이 나타난 꽃의 전..

詩 2019 2019.04.11

추억의 고장/배 중진

추억의 고장/배 중진 1974년 청년 시절에 학생 신분으로 공무원 발령이 났던 곳 물어물어 찾아갔던 곳 솔뫼성지가 가까이에 있는데도 모르고 지나쳤던 과거 관심이 없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키는 대로 뛰어다녔으니 암울했던 시절이었는데도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고 이역만리에서도 근 반세기가 지났건만 자꾸 생각이 났는데 절호의 순간이 찾아와 Navigation은 이상한 곳으로 안내를 했어도 턱 들어서니 말문이 막히고 감정이 복받쳐 젊은 직원 앞에서 눈물이 쏟아져 감추려고 애를 쓰다가 정신없이 나왔다 아마도 그녀는 이상한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주절거리다 사라졌거니 생각하겠지만 외로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리 그리움을 안고 사는 고충, 보통 사람은 모르리 더..

詩 2019 2019.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