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배 중진
꿈에 그리던 만리포를 갔는데
고교 시절의 그 만리포가 없었다
바다 쪽이 육지가 되었고
육지 쪽이 바다로 보여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이 지긋하신 분에게 여쭈어보았다
인천으로 가던 연락선을 어디에서 탔었느냐고
저쪽이라고 하면서 가리킬 때
나는 우리에게 마지막 떨이로 상한 조개를 팔던
아주머니가 머리에 이고 오시는 정경이 눈에 선했다
그러면서 방향감각을 되찾았고
우리가 천막을 쳤던 곳을
아련하게 보았지만
그때의 소나무와 깨끗한 모래언덕 그리고 흐르던 맑은 물은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더 자세하게 기억을 더듬고 싶었지만
일행도 있고 아픈 기억을 들춰내기도 싫었다
상한 조갯국을 끓여 먹고
비가 부슬 내리는 밤중에, 밤새
설사하고 구토하고 배를 움켜쥐고 오한에 떨던 처참한 몰골
인천이고 뭐고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고향으로 되돌아갔던 아픈 추억
누가 헬리콥터로 실어다 줬으면 더 바랄 것도 없었던 악몽의 순간
버스를 타고 갈 수나 있을까
자신이 없었던 뜨거운 여름
우린 그렇게 만리포와 악연을 맺었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걸 어떻게 해
가슴엔 포효하는 호랑이도 그렸고
젊음을 맘껏 발산하고 싶었는데
그때를 못 잊어
미국에서 'Molina'가 들어 있는 CD를 사서
만리포가 생각날 때마다 듣고 다닌다
반세기나 가까이 지난 지금도
1970년대 만리포 해수욕장에 갔다가 곤욕을 치르고 바로 다음 날
고향으로 되돌아갔답니다. 원래는 원산도인가 덕적도까지 가려고 배표도 알아
보았는데 조갯국을 잘못 끓여 먹고 된통 고통을 당했는데 백사장 중간, 친구분들이
서 계신 근처에서 마지막 떨이로 조개를 한 사발에 10원에 팔기에 저녁거리로는
더 좋을 수가 없다고 예상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었죠.
2019년 가친을 모시고 점심을 하면서 방향을 잡아보려고 했는데
해안이 거꾸로 된 듯한 인상을 받았고 나중에야 가까스로 추억이 되살아나
더듬거렸는데 천지개벽에 우리가 텐트 쳤던 아름다운 모래 동산까지는
가보지도 못했고 변해서 기억이 엉망으로 되어 서글펐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몇 장이 고향의 어느 곳에 있겠지만 지금은 가까스로 아픈 추억만이
더욱 뚜렷하게 기억되어 적어 봅니다. 멋진 8월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