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진(裵重鎭)

울지않는 새/배중진 추위에도 견뎌야 하고 배가 고프면 뭐래도 먹어야 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어 외로워도 참아야 함을 일찍이 배웠건만 정말 힘들어 하는 모습 간밤에 내린 폭설과 강풍으로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묻히고 추워서 움직이기 싫지만 홀로라도 나와서 주린 배를 채워야 하니 말 한마디..

눈이 왔던가/배중진 바람이 세게 불어오고 눈발이 앞을 가렸으며 추위로 꽁꽁 얼게하고 마음을 굳게 닫게하고 하루가 처절하게 지났건만 바람은 꺽일 줄 모르고 추위도 멀리 가지않고 하늘은 그나마 열려 있었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 동원하여 뿌리고 밀며 치우고 웃으면서 살아남은 것에 감..

아침엔~/배중진 떠오르는 태양도 바쁘다 쑥쑥 말끔하게 솟구쳐 오른다 아침을 준비하는 손놀림도 분주하다 물론 커피도 빨리 지글거린다 기상예보도 자주 발표한다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다 생각도 빠르고 심사숙고할 여지가 없다 이웃과의 인사도 짧다 그냥 손 한 번 흔들어 준다 짧은 전쟁이다 ..

모스부호, The Morse Code/배중진 .-- .... .- - What .... .- - .... hath --. --- -.. God .-- .-. --- ..- --. .... - wrought 이렇게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넓고 넓은 세계가 점과 선으로 이어지고 있었지요 부인이 아프다고 해서 달려와 보니 이미 무덤이 이루어진 후 사나이 가슴에 칼로 점을 찍고 길게 후비며 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미국 내전중에 링컨대통령은 전보를 받고 명령을 하달하는 그야말로 우리가 지금 즐기는 통신수단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겠습니까 말을 이용 줄기차게 달려도, 연기를 피워도 전보만은 못했으리라 우리의 생활을 모스가 보고 있다고 생각을 했지요 아마 그가 살아 있다면 더 좋은 수단이..

진달래/배중진 어느 추운날 뒷동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하얀색 눈위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붉은색이 아니 분홍색이 낯을 가리는 듯 다소곳이 찬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네 그대의 부르짖음이 없었다면 아직도 잠에서 그 추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듯 하였다네 어떻게 봄이 왔음을 알았는지 첫..

붓꽃/배중진 보리가 자라 듯 쑥쑥 올라 오더니 펜이 될까 창이 될까의 기로에서 더 강하다는 붓으로 변하였고 활짝 피어 기개를 높이고 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피고 지는 꽃들이 벌써 여러개 붓꽃도 따스한 양지에서 꽃을 피우지만 오래가진 않으리 있는 동안 맘껏 사랑하리라 즐거움을 주고..

아카시아/배중진 유난히도 향이 짙었던 아카시아 이곳이 고향하늘 이련가 길을 가다가 갑자기 향수를 느껴 위를 치어다 보니 아카시아 나무 상상의 나래는 또 고향을 휘젓고 있었다 토끼를 주기 위해서 즐겨 따던 잎들 싱싱한 꽃을 입안에 넣고 씹던 일들 가끔 떡속에 꽃을 넣어 쪄먹던 일들 유난히도..

이름모를 꽃/배중진 이런 꽃이 핀다는 것을 전에는 몰랐지요 어느사이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도 있어요 하는거야 뭐가 있어 되물었더니 방석위에 있다고 하네요 빨간색으로 시작하더니 한 눈 파는 사이 분홍색으로 갈아 입더군요 진달래가 다 사라진줄 알았더니 자기도 진달래의 사촌이라..

장미/배중진 이곳의 장미는 분홍색이다 분홍이 너무 약한 느낌이 들어 별로 환영하는 기색이다 빨강, 노랑, 하얀색에 비해서 비가 내린 후 아름다운 물방울을 머금은 꽃들을 살짝 엿보고져 산책을 나왔는데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장미! 드디어 너의 시대가 왔구나 시작은 미미했으나 주위의 ..

인생/배중진 저 산을 내가 넘어 왔던가 저렇게 얕은 산을 넘어 오면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 별것 아니지만 다시 넘고 싶지도 않구나 길이 없어 불평도 하고 올라가는 길만 있어 짜증을 내기도 하고 꾸부러 지기만 하여 답답하기도 하고 냇물이 가로 막아 하소연도 했던 저 보잘것 없는 산이 그땐 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