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7 180

가을비/배 중진

가을비/배 중진 가을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퍼부으니 그동안 가물었던가 그 물 다 받아내는가 싶더니 알게 모르게 떨어져 쌓인 낙엽이 갈 곳 몰라 하다가 빗물이 흘러가니 같이 가고 싶다고 옹기종기 모였다 가을은 혼자 떠나는 계절이라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같이 가려는 동반자 외롭지 않으리 오순도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다 보면 어디에선가 서슬 시퍼런 혹독한 바람과 눈물 쏙 빠지게 하는 호호백발 겨울도 만나겠지 ** 세월이 가는 소리 ** 싱싱한 고래 한마리 같던 청춘이 잠시였다는걸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서른 지나 마흔 쉰살까지 가는 여정이 무척 길줄 알았지만 그저 찰나일 뿐이 라는게 살아본 사람들의 얘기다 정말 쉰살이 되면 아무것도 잡을것 없어 생이 가벼워 질까 사랑에 못박히는것..

詩 2017 2017.10.30

삶/배 중진

삶/배 중진 서로 무척 보고 싶었겠지 수척한 모습만 보아도 알 것 같았고 고된 여름을 보내느라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가 선명했고 고통으로 마음 씀씀이가 깊듯이 길이 놓인 자리에서 더 밑으로 내려가야만 했는데 흘려 떠내려간 눈물 자국은 이제 기력을 다했는지 흥건하지 않았고 울다 지쳤는지 크게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거친 숨을 헉헉거리며 높은 곳만을 보고 올라가는 등산객이야 깊게 파인 아픔을 거들떠보기나 하겠는지 그들은 오늘 하루 올라갔다 내려가면 그만이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임 생각하느라 쫄쫄거리는 이 마음 알아주기나 할까 그래도 임이 있어 세상 살맛 나고 가끔은 아파도 달래면서 흐르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지 저도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랜드 캐니언은 구경했어도 자이언과 브라이스 캐니언은 구경하지 못했답니다...

詩 2017 2017.10.28

단풍은 어디에/배 중진

단풍은 어디에/배 중진 자꾸 늦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창밖을 살펴도 늦은 가을은 시퍼렇게 살아 있고 눈까지 부라리니 불평할 수가 없는데 무슨 앙탈이 그리 심할까 어찌나 기세가 등등한지 이때쯤 향기를 듬뿍 담고 찾아오던 국화마저도 입을 꾹 다물고 웃음기를 잃었구나 하루의 변화가 심한 요즈음 기다리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무는 요동을 치며 으르렁거리고 채 익지 않은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며 쓰디쓴 이별의 눈물을 흘리니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질펀한 가을마당 아프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토록 기다렸던 가을은 허무하게 털리는가 보다 ** 세월과 함께 흘러간 내 청춘...!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이젠 내 나이가 옛날의 아버지가 되었고, 옛날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세월과 함께 떠나버린 청..

詩 2017 2017.10.24

가을의 강/배 중진

가을의 강/배 중진 강물은 흘러 흘러 낮은 바다로 향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슬픔을 안고 침묵으로 흐르고 걸리는 것이 있으면 두말하지 않고 돌아서 먼 길 가고 두려움 없이 막아서는 자 있으면 후려쳐 얼마나 강한가 시험을 하곤 넘을 수 있으면 넘고 머물 수 있으면 머물다 화가 풀리면 제 갈 길 가며 씻어주고 핥아주고 윽박지르고 소리치고 달래주고 눈물 흘리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다보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응어리진 가슴 툭 터져나가는 기쁨도 맛볼 수 있으리 가을의 강은 사연 많은 낙엽도 부담 없이 친구가 되어 동행해주지 사랑, 이 큰 구원님 호흡을 할 때 보면 사람마다 다름니다. 코 끝으로 호흡 하는 사람, 가슴으로 호흡 하는 사람, 배로 호흡 하는 사람, 단전으로 호흡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 부터..

詩 2017 2017.10.24

가을 여행/배 중진

가을 여행/배 중진 어린아이들이 울부짖는 여름을 피해 모든 것이 성숙한 가을에 서두를 것도 없이 자연에 동화되기 위하여 뚜렷한 방향도 정하지 않고 집에 나섰지요 예상했던 대로 하늘은 높았고 구름 또한 느긋한 모습이었으며 배가 부른 산새들은 예쁜 목소리로 지저귀며 거북스러운 것을 소화하는 듯했지요 물을 막은 곳에서도 물고기들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도록 물길을 낸 것을 보면서 인간이 아닌 것에도 배려한 점이 매우 가상했고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고기가 사랑스러웠답니다 예전엔 배를 이용한 수송수단도 있었고 노새를 부려 배를 이끌기도 했던 canal system을 보면서 추억으로만 남아있지만 그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 방법이었겠지요 우리도 알뜰살뜰 살았던 시절이 있었고 욕심부려 애를 썼어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 있어 ..

詩 2017 2017.10.20

얼룩말/배 중진

얼룩말/배 중진 촐랑대길 좋아하는 얼룩말 펄쩍펄쩍 뛰며 힘을 자랑하고 꺼떡거리며 대갈통을 흔들거리고 갈기를 멋지게 휘날리며 젠체하고 아가리를 씰룩거리며 우쭐우쭐 무리를 벗어나지 마라 그렇게 타일렀건만 두려움이 없음을 만천하에 떨치려는지 무성하게 자란 숲속으로 들어가 홀로 돋보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가슴까지 치밀어오르는 풀 속에 낮게 웅크리고 있는 사자를 발견하고 멈칫거리다가 들이받을까 생각도 했겠지만 다급히 머리를 돌려 하필 도망간다고 뛴 곳이 사자들이 매복하고 우글거리는 정글 뭉치면 살 기회가 많아지는데 뭘 믿고, 천방지축이었을까 블벗님 시월상달도 어느덧 하순을 맞이하네요. 히말라야 설상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새도록 우는 야명조(夜鳴鳥)라는 새는 깃털이 없어 밤이 되면 혹독한 추위를 이기지 못해 밤새도..

詩 2017 2017.10.17

평지풍파를 낚는 낚시꾼/배 중진

평지풍파를 낚는 낚시꾼/배 중진 가을빛이 감도는 넓은 바다 여름의 열정을 식히듯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한없이 너그러운데 엉덩이에 뿔이 난 젊은이 둘 못다 한 여름이 아직도 아쉬운지 총알 같은 속도로 제트 스키를 파닥거리며 짓쳐나간다 하얀 물거품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일으키며 어찌나 멋대로인지 조용하게 사색하며 낚싯줄만 늘인 낚시꾼들 옆으로 바싹 다가와 갈매기라도 떨어트릴 정도로 물보라를 일으키곤 깔깔거리며 여운을 남기고 멀리 사라진다 쉬고 있는 파도를 성가시게 건드니 견디다 못한 물결이 하얗게 부글부글 끓으면서 질색한다 못다 한 이야기 다하지 못한 이야기 한여름 성하 한겨울 못다 한 여름이 아직도 아쉬운지 한여름이 기도하는 부처님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하고 뜬구름을 잡으려다 선남선녀가 구름이 되어 서로 ..

詩 2017 2017.10.16

13일의 금요일/배 중진

13일의 금요일/배 중진 내용도 잘 모르면서 나쁘다고 하니까 조심을 하긴 하는데 군대에서 제대날짜를 받아 놓은 고참 병장 동기의 손가락이 끊어진 날도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오늘도 아픔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멀리 나가지 않고 차량도 이용하지 않았으며 남과 가급적이면 좋은 말만 골라 했으며 좋게 아무 사고 없이 마치게 되어 감사드린다 생각하고 거실에서 TV를 시청하며 이것저것 읽고 전등을 끄고 돌아서는 순간 '펑' 하면서 전구의 밑이 터져 나가 바닥 이곳저곳에 떨어졌다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전구를 건드린 것도 아닌데 조금만 분초가 달랐으면 머리에 떨어져 피 흘렸지 않았겠나 생각하니 오싹하는 느낌이다 이런 것도 13일의 금요일이라서 벌어졌는가 끌어다 붙이지 않을 수가 없어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고 다음에..

詩 2017 2017.10.14

황혼길/배 중진

황혼길/배 중진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욕심을 채울 수 없는 모양이다 안 보면 마음에서도 떠난다고 했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고 꿈까지 심하게 꾸는 날이 자주 있어도 가까이 가 사랑이라는 말을 꺼낸다는 자체가 죄악인지라 감내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이다 서로 나이 들어 사랑 감정을 억제할 나이인데도 그것이 잘 안 된다 곱게 황혼길을 평화스럽게 가고 있는데 들쑤실 일이 없고 건강하게 잘 가도록 서로 부축해 주면 그뿐이지 않겠는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사람 항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더는 바랄 것이 없겠네 김무식님 그대가 지금 누구에게 차마 말을 못하는 것은 참 나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있는 모든 것은 존재 그 자체이며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존..

詩 2017 2017.10.14

슬픔이 지나쳐/배 중진

슬픔이 지나쳐/배 중진 천사와 같은 딸이 아파 누워있는 남자친구를 간호하러 가서 돌아온다는 전갈을 받은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나타나질 않으니 부모가 찾으러 나섰는데 불길한 심정은 가실 길이 없고 그러길 며칠 뒤 아침 운동하러 나간 사람이 수상한 물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으며 결론적으로 행방불명이 된 딸로 판명이 났는데 여러 정황을 분석하고 감식한 결과 고속도로 순찰 경찰의 짓으로 판단이 났는데 DNA 감정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더 어려웠지만 현장감식반에 의해서 과학적인 수사 방법으로 입증했어도 새까맣게 타들어 간 아버지의 심장은 이미 슬픔이 넘쳐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었으며 숨만 쉴 뿐인데 어찌나 컸던지 딸이 비명횡사한 지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아마도 외로운 곳에서 서로를 보듬어 주고 ..

詩 2017 2017.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