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4 306

국화/배 중진

국화/배 중진 은근슬쩍 국화는 피어오르고 은발의 은퇴한 신사숙녀분들이 은은한 향기가 못내 그리워 은총을 받으려는 듯 사통팔달에서 모여들었으나 너무 일찍 서둘렀기에 아직 피어나지 않은 봉오리도 있어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기도 했는데 모처럼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어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위해서 식물원의 구석구석을 더듬어 보네 특별한 날이라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았기에 평상시에 알지 못했던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도 했으며 반달이 비추는 가운데 은물결이 이는 분수도 살피고 인적이 드문 숲을 지나면서 낙엽 지는 소리가 두렵기도 했으나 시원한 가을 날씨라 옷소매를 당차게 걷어 올리고 낮에 보았던 곳 밤에 또 찾아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했지만 지치지도 않았고 국화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네 은근슬쩍..

詩 2014 2014.10.03

가을바람/배 중진

가을바람/배 중진 매미 소리 들리지 않는 듯하여 창문을 활짝 여니 기다렸다는 듯 갈바람 쏴 하고 뛰어들어 시원해서 좋다고 했으나 가는 듯 다시 찾아온 여름 날씨가 며칠 계속되어 부랴부랴 여름옷 다시 꺼내입고 성급함에 민망했는데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여름도 땀을 흘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상을 짓더니 급기야는 서러운지 펑펑 빗물을 한동안 쏟아냈고 서러움도 끝은 있어 겸연쩍은 듯 햇빛에 민망했던지 말끔히 씻어 하늘을 더욱 높게만 하였고 곱게 곱게 단장하여 나뭇잎마저 알록달록 아름답고 역경을 딛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파악할 정도로 성숙했으며 꼿꼿했던 성깔도 겸손함이 꽉 들어차 알곡 되어 고개 숙이네 가을바람 소리 없이 산과 들판을 휘저으며 무르익어 가고 가을 하늘 공활하여 끝도 보이지 않았..

詩 2014 2014.10.02

무료한 나날/배 중진

무료한 나날/배 중진 매일 반복되는 따분한 생활로 자연에 대한 적응력도 잊혀가고 먹이를 주면 주는 대로 체면 불고하고 졸졸 따르고 대부분 시간은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다가도 집요하다 못해 귀찮게 구는 인간이 만든 좁은 우리에서 울상을 지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반갑게 맞이하여야 하는 심드렁한 심정 비참함에 달해 가끔은 살기 어린 이빨로 위협하며 갇혀있다고 무시하지 마라 경고하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즐겁다고 보채는 못된 아이들의 아우성에 기가 막혀서 굴속으로 피해 들어가 쉬었으면 해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게 문은 잠겨있어 왔다 갔다 문 가까이 서성대거나 죽을 치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막연하게 자유스러웠던 생활을 그리워하네 친구도 많았고 먹을 것도 지천으로 널려있어 풍부했고 넓은 세계를 마음껏 뛰놀고 다녀..

詩 2014 2014.09.30

석별의 정/배 중진

석별의 정/배 중진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며 껴입은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두리번두리번 가을을 찾다가 살며시 호숫가에 당도하니 물고기와 고추잠자리가 밀어를 즐기다가 들켰는지 허겁지겁 물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고추잠자리는 갈 곳 몰라 맴맴 돌다가 사라지네 절대로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었고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었을 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느냐마는 잔잔한 물결이 가슴속에 일며 공연히 미안하기만 하네 살금살금 발을 옮기며 거울같이 평온한 호수 속 가을에 넋을 빼앗기고 새소리, 풀벌레 소리에 심취하며 빈듯한 벌집을 건드리지 않고 평화롭게 빠져나오니 산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안내하면서 이곳에도 가을이 있고 저곳에도 있다며 재잘재잘 늦더위를 즐기면서 나무를 박차니 작은 가지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잎이 ..

詩 2014 2014.09.28

초승달은 보이지 않고/배 중진

초승달은 보이지 않고/배 중진 초승달은 잰 며느리가 본다더니 넓은 바닷가 느긋하게 걷고 있으니 별은 보여도 아미월은 보이지 않아 멀리 빠져나간 썰물처럼 아쉽네 귀뚜라미는 파도소리에 삼키지 않으려 요란하게 밤하늘을 찔러 보아도 불빛도 없이 멀리 떠나가는 쾌속정의 엔진 소리에 기가 꺾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바다 빛은 구름에 의해 허옇다가도 푸른 하늘로 금세 파래져 찰랑거리고 노을빛이 감도니 발그스름했다가 컴컴한 밤엔 가로등불만 제외하고 같은 색을 띠네 마지막 더위를 식히려는 듯 수영객은 퐁당거리고 백사장엔 아이들끼리 개와 강아지 따로 뛰어다니며 가까이 다가온 단풍잎들을 소리 지르며 쫓아 보내려 하지만 어둠이 엄습하듯 가을은 덮쳐오리라 초승달은 초저녁에 잠깐 나타났다가 지므로 부지런한 며느리만이 볼 수 있다..

詩 2014 2014.09.28

초가을/배 중진

초가을/배 중진 그동안 시원하긴 했었으나 여름과 가을을 연결하는 다리를 지나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북쪽으로 치달리니 시간에 예민한 숲과 나무들은 말하고 있었고 구름이 잔뜩 머흐른 자리를 벗어나 활짝 열린 파란 하늘 밑으로 들어서니 우수에 찬 얼굴은 금세 활짝 펼쳐지고 수다가 저절로 쏟아지네 덩치 큰 개도 즐거운지 Hudson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오리들은 먹을 것을 놓칠세라 눈치를 보더니 날개를 펴 힘껏 세를 과시하고 갈매기도 틈새에 끼어 지지 않으려 눈꼬리를 치뜨네 Catskill Mountain은 유명한 그림의 배경이 되고 가을이 되니 화가들의 손놀림이 바빠지며 곡식들도 성장을 멈추고 조용히 고개 숙이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니 유유자적 이 가을을 즐길 일이다 Olana Rip Van Win..

詩 2014 2014.09.26

새들은 둥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배 중진

새들은 둥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배 중진 새롭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어렵게 알들을 부화시켜 키워놓곤 힘들게 먹이 물어다 성장시켜 힘차게 새끼들이 둥지를 박차고 나가면 그것으로 그들의 삶은 끝나는 듯 정들었던 자리로 돌아와 사는 새들은 보이지 않으며 임시방편 사용하기에 온갖 치장을 삼가고 자손에게 넘겨주려는 소유욕도 부리지 않으니 진정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그대들이요 천성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이도 그대이며 정성으로 자신을 지켜가는 것도 그대 몫이고 지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도 그대이니 부족한 것 느끼지 않는 넓은 세상에서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더는 바라지 않고 안되는 것을 억지로 되게 꾸미지도 않으며 높고 넓은 하늘을 벗 삼아 자연스레 살아가네 하나님의예쁜딸2014.09.22 19:25 계란의 용도..

詩 2014 2014.09.22

불사조/배 중진

불사조/배 중진 불새야 훨훨 날아오르거라 13년 전의 악몽을 떨치고 푸른 창공으로 높이 솟아 자유롭게 마음껏 풍요로운 삶을 누리거라 Phoenix는 향나무를 손수 쌓아 놓고 남김없이 자신을 태운 후 잿더미 속에서 부활하여 원 없이 삶을 시작한다고 했지 봉황의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아시아에서는 상서로운 새로 여기며 상징적으로만 알고 있지만 자유와 평화를 짓밟는다면 그 누구든 응징하리라 불사조는 악의 구덩이에서 보란 듯이 짓쳐 오르고 다시는 9/11 같은 참극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싶고 무고한 희생자의 삶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면서 눈물 없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날갯짓하려무나 불새야 훨훨 날아오르거라 13년 전의 악몽을 떨치고 푸른 창공으로 높이 솟아 자유롭게 마음껏 풍요로운 삶을 누리거라 Phoeni..

詩 2014 2014.09.19

양심 찾기/배 중진

양심 찾기/배 중진 밤에 자다가 기도가 막혀 화들짝 질겁을 하면서 몸부림치다가 깨어나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할딱거리길 몇 번 한쪽 코가 가끔 막힌다 생각하여 주치의에게 이야기했더니 알레르기일 가능성이 높다며 Allergy 전문의를 소개해주면서 점잖게 코와 목구멍을 조사하곤 특별한 증상이 없으니 피부검사를 받으라고 하여 바로 예약해서 첫째 날은 양팔에 50번 바늘로 찔러 각종 반응을 살폈고 둘째 날은 음식에 관한 것이라는데 역시 따갑게 오른쪽 어깨에 15번 정도 바늘로 일일이 떠서 살피고 왼쪽 팔에는 35번 정도 일렬로 찔러 조사했는데 결과는 천만다행 하게도 아무 이상이 없단다 더불어 Sleeping Test를 받으려고 했더니 보험회사로부터 기각당했는데 문제는 병원에서 6일간 잠을 자며 각종 검사를 받아야..

詩 2014 2014.09.19

자나 깨나 고향 생각/배 중진

자나 깨나 고향 생각/배 중진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잔뜩 껴입고 산책하러 나갔다가 땀이 송알송알 솟아 나오기에 덧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 메고 달랑달랑 공원으로 들어서니 앞서가는 사람이 친척의 얼굴로 보이고 딱딱한 길은 부드러운 오솔길로 변하여 산새 소리 들리고 풀 내음이 폴폴 거리고 높고 낮은 산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한 선친을 모신 자손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자랑스럽게 이어지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조상님이지만 한가위 차례를 집에서 정성껏 모신 후 단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성묘갔다가 일부러 산길을 이용하여 돌아오면서 선산에서 꺾은 밤나무와 감나무를 자랑스럽게 들고 새 옷을 입은 아이들은 깡충거리고 말 만한 처녀들도 부끄럼을 잊고 덜렁거리는데 큰아버지, 아버지, 아저씨, 삼촌, 고모, 사촌, 육촌으로 구..

詩 2014 2014.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