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은 까마귀/배 중진
부지런한 까마귀들
벌써 아침을 해결한 모양인지
여름에 살아남은 높은 나무에 앉아
무슨 담판을 벌이는 듯
옆 건물 옥상까지 차지하고
열띤 논쟁이 끝날 줄을 모른다
오늘은 일요일
모처럼 햇볕을 맞이하여
하늘 높고 매우 청명한 가을 날씨로
비구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니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도 많은가 보다
한 마리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고
수백 마리가 동시에 재잘거리니
애써 늦잠 자는 이웃
화가 날만도 하건만
창문 열고 소리치는 사람 없는 곳
몇 시간을 찧고 까불고
동시에 날아올랐다가
한 바퀴 돌곤 또 두서없이 앉길 몇 차례
쉽게 풀리지 않는 그들만의 문제가 있는가 보다
그러더니 갑자기 일제히 날아올라
어디론가 휑하니 사라졌다
나이 든 까마귀만 홀로 남겨놓고
같이 못 갈 사정이 있으리
측은지심을 엉뚱하게 날려 보내려
날개 쭉 펴 말리고 속속 다듬으면서
가끔 인간 세상도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