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홀로 남은 까마귀/배 중진

배중진 2018. 9. 17. 00:17

홀로 남은 까마귀/배 중진


부지런한 까마귀들

벌써 아침을 해결한 모양인지

여름에 살아남은 높은 나무에 앉아

무슨 담판을 벌이는 듯

옆 건물 옥상까지 차지하고

열띤 논쟁이 끝날 줄을 모른다


오늘은 일요일

모처럼 햇볕을 맞이하여

하늘 높고 매우 청명한 가을 날씨로

비구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니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도 많은가 보다

한 마리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고

수백 마리가 동시에 재잘거리니

애써 늦잠 자는 이웃

화가 날만도 하건만

창문 열고 소리치는 사람 없는 곳


몇 시간을 찧고 까불고

동시에 날아올랐다가

한 바퀴 돌곤 또 두서없이 앉길 몇 차례

쉽게 풀리지 않는 그들만의 문제가 있는가 보다


그러더니 갑자기 일제히 날아올라 

어디론가 휑하니 사라졌다

나이 든 까마귀만 홀로 남겨놓고


같이 못 갈 사정이 있으리

측은지심을 엉뚱하게 날려 보내려

날개 쭉 펴 말리고 속속 다듬으면서

가끔 인간 세상도 내려다본다











'詩 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비/배 중진  (0) 2018.09.26
한가위/배 중진  (0) 2018.09.23
때까치/배 중진  (0) 2018.09.15
고주망태/배 중진  (0) 2018.09.13
한국인/배 중진  (0) 2018.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