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망태/배 중진
통학생이 집에 일찍 가고 싶은 것은
반복되는 생활에서 일탈하여
환희에 젖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으리
하늘은 높고
숙제도 없어 구속감을 느끼지 않기에
도망치듯 다음 역으로 앞질러 가
밤차가 아닌 낮차를 간신히 얻어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이 시원함이란
장난치다 하나가 떨어져 죽어도 모를 만큼 재미있기도 한데
회덕역 대합실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술집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고주망태가 된 사람이 밀쳐 나와 발라당 쓰러지고
서슬이 시퍼런 술집 작부가 올라타
벗어 들은 하이힐로 얼굴을 내리칠 찰나
간신히 막고 피투성이를 살펴보니
아, 글쎄 동네 아저씨였네
인사불성이 된 사람을 추슬러
완행열차에 실긴 실었는데
문제는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고향 역에 다다랐건만
깨어날 줄을 몰라
30분 거리를 등에 태우고 걸었는데
고등학생이라 망정이지
축 늘어진 사람을 업고
가방을 들고 동네로 들어간다는 것은
고역 중의 고역이었고
일찍 집에 간다는 설렘을 완전히 망가트린 사고였다
그분의 집은 또 윗동에 자리 잡아
헐떡거리며 비지땀을 주체하기조차도 어려웠는데
그 아저씨는 이런 사실을 기억이나 하고 있었을까
그 이후 한 번도 뵙지 못했고
그전에도 말 한번 나누지 못한 분이지만
그날 이후 집에 일찍 가고 싶은 마음이 깡그리 사라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사람은 제명까지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