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뻐꾹 종/배 중진

배중진 2018. 6. 12. 01:34

뻐꾹 종/배 중진

시간을 훔쳐 가는 뻐꾸기가 싫어
평온한 마음이었는데
자꾸 조바심 나게 뻐꾹 뻐꾹 하고
삶을 마구 몰아가는 것이 싫어

사랑의 보금자리도 지을 줄 모르는 것이
뻔뻔스럽게 관계를 맺고
생존하는 전략이 남다른 것이
눈치 하나는 매우 빨라
다른 새의 보금자리에서 알 한 개를 훔쳐 깨트리고
대신 자기의 알 하나를 무책임하게 던져 놓는다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악마는 악마를 낳고
새끼는 눈도 뜨지 않은 것이
비슷한 색깔의 작은 알을
넓적한 등과 가느다란 발 그리고 힘없는 날개까지 이용하여
진짜 어미가 보는 앞에서도
이미 부화한 새끼마저 무자비하게 밀쳐내 죽음의 구렁텅이로 떨군다

순진무구한 어미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어느 사이 눈 녹듯 적대감은 사라지고
사랑으로 더욱 감싸니
기가 찰 노릇이요
한 가족의 운명은 곤두박질 처진다

미련하고 순수한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선한 것이 아니요
요모조모 따져 미리 불행을 막았어야 했는데
불찰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방조 내지는
수수방관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

불쌍한 새끼들의 불행한 운명은
잔인한 뻐꾸기가 같은 둥지에 알을 낳자마자 시작해서
결국은 죽음으로 치달렸다

염치없는 뻐꾸기시계가
자꾸 불운을 예고하는 느낌이라
매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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