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때아닌 우박이 난리치는 속을 뚫고/배 중진

배중진 2018. 5. 15. 08:12

때아닌 우박이 난리 치는 속을 뚫고/배 중진


여행을 떠나는데

일기예보와는 달리 

안개가 자욱하고

비까지 쏟아질 기세였다


그래도 모든 것을 예약했기에

억지로 짐을 자동차에 쑤셔 넣고 

어화둥둥 출발


가다가 들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구경하고

배가 고프면 사서 먹고 마시고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무리한 속도를 자제하며

유유자적하는데


밝은 햇빛 속에서도

하늘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굉장한 먹구름이 성난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는다


검은 속으로 겁도 없이 들어가니

점점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 버렸으며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하더니

우박이 창문을 거세게 두들긴다

자동차가 우그러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피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마땅한 곳이 없었고

뒤에서는 용감한 사람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게걸음 하듯 엉금엉금 기며

제발 멈추길 기원했으나

기도는 응답이 없었고

난국을 운명에 맡겨 그냥 헤쳐나가기로 했다

천둥·번개가 치고

토네이도로 휘감아 날려 보낼 심산인지

몸부림치는 용의 오름을 본듯한데

천만다행으로 극에 달하지는 않았지만

우박이 난리 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굉장했고

순간을 피하니 그저 우습기만 한데

이 순간, 목숨 잃은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웃을 일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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