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골 호랑이/배 중진
호랑이의 눈이 되어
밤낮으로 뚫어지게 지키던 서울 상공
도봉산
수락산
백운산
불암산
수유리
미아리 쪽으로
우리의 허락 없이는 한치도 들어오지 못하던 비행기
그리곤 40년이란 세월의 성상
변한 것이 없었고
남북한은 여전히 대치 상태
그때의 호랑이들
뿔뿔이 흩어져
자취가 묘연하고
미국에서도 보이더니
몇몇이 봄날에 모였다
무서운 이빨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발톱이 빠지고
머리가 훌렁 까지고
배가 남산만 하게 나왔지만
어슬렁거리며 다시 어울렸다
얼굴을 사납게 비비고
고기를 마구 뜯고
소주를 무지막지하게 들이켜니
금세 홍안의 보기 좋은 소년이 되어
회춘한 초로의 젊은이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돌아가서
미국에 있어 참석하지 못한
불쌍하고 잊힌 호랑이를 포효하듯 부르니
부스스 깨어
통화하고
사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도
이별의 아픔이야
그리움이야 말끔히 가시겠는가
산천초목이 쩡쩡하게
울부짖었는데
지금은 세월에 밀렸어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건강하여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어슬어슬 깊은 산으로 자취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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