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안암골 호랑이/배 중진

배중진 2018. 4. 17. 02:36

안암골 호랑이/배 중진


호랑이의 눈이 되어

밤낮으로 뚫어지게 지키던 서울 상공


도봉산

수락산

백운산

불암산

수유리

미아리 쪽으로

우리의 허락 없이는 한치도 들어오지 못하던 비행기


그리곤 40년이란 세월의 성상


변한 것이 없었고

남북한은 여전히 대치 상태


그때의 호랑이들

뿔뿔이 흩어져

자취가 묘연하고

미국에서도 보이더니


몇몇이 봄날에 모였다

무서운 이빨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발톱이 빠지고

머리가 훌렁 까지고

배가 남산만 하게 나왔지만

어슬렁거리며 다시 어울렸다


얼굴을 사납게 비비고

고기를 마구 뜯고

소주를 무지막지하게 들이켜니

금세 홍안의 보기 좋은 소년이 되어

회춘한 초로의 젊은이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돌아가서

미국에 있어 참석하지 못한

불쌍하고 잊힌 호랑이를 포효하듯 부르니

부스스 깨어 

통화하고

사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도

이별의 아픔이야

그리움이야 말끔히 가시겠는가


산천초목이 쩡쩡하게

울부짖었는데


지금은 세월에 밀렸어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건강하여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어슬어슬 깊은 산으로 자취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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