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1

어머니가 쓰신던 침대에서/배중진

배중진 2011. 10. 28. 06:40

어머니가 쓰신던 침대에서/배중진

어머니가 고통을 참으셨던 그 병원침대에 누워
불효자가 잠을 자면서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어 봅니다
순간의 실수로 그 엄청난 변화와 병원생활을 하소연 하시고
첫번째 수술을 잘 받으시고 성공리에 퇴원 하셨다지요

그러함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알 지도 못한 불효자는
망둥이가 뛰듯 이리 저리 헤매다가 늦게 알았으며
아버지 곁에서 잠을 청하고 한 지 단 이틀인데
침대생활에 안락하게 젖어 구들방의 불편함을 불평하여

결국에는 어머니가 쓰시던 침대에서 편안하게 잤고
어머니와 짧은 대화도 나누었답니다
역시 어머니의 품은 따스하네요
내치지 않으시고 다독이시어 안락한 잠을 잘 수 있었지요

동생들과 누나가 달려 왔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김장을 한다고 모처럼 육남매와 딸린 식솔들이
속속히 들어서게 되는데 어머니가 이런 것을 보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지요
얼마나 신바람이 나셨겠는지요

비가 오기 전에 무우와 배추는 뽑아다 놓았고 벌써 절이기도 했답니다
재빠른 두 여동생들이 맛있게 저녁상을 차려 국도 없이 점심을 잘 드셨던
아버지는 과식을 하셨고 술도 하시면서 즐거워 하셨는데
항상 느끼지만 공백이 너무나도 크옵니다

비가 떨어지면서 기와지붕 끝의 함석에서 많은 소리가 들리고
귀뚜라미도 정원에서 또는 처마 밑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네요
옛날에 듣던 소리와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답니다
어머니 부디 극락왕생 하시고 저희들은 힘들어도 참아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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