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3

증조할머니/배 중진

배중진 2013. 12. 10. 09:00

증조할머니/배 중진

 

엄마의 사랑보다도

할머니의 돌보심 보다도

증조할머니와의 기억이 더 많으니

알 수는 없다

 

허리를 펴시면 키가 크시나

언덕을 오르실 때는 꼬부라지셨고

남들에게는 호령하시지만

증손자한테는 귓속말로 소곤거리신다

 

다래끼라도 나면

좁은 길 중간 즈음 돌 위에 눈썹을 하나 뽑아 올려놓고

누구라도 지나가다 건드려 눈병 옮기를

누구보다도 더 간절하게 비셨으며

 

시원한 국 속에 있는 명태 눈깔을

맛좋은 반찬에 있는 조기 눈깔을

먹으라고 건네주시기도 하셔

눈총까지 받으셨는데

 

어느 날 깜깜한 한밤중에

안채에서 여자분들의 곡소리가 들렸고

사랑방은 증손자 잠자리만 남겨놓고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었으며

 

부고를 돌릴 사람들을 벌써 뽑아

이 동네 저 동네로 보내느라 어수선했던 밤

증손자 새끼 한마디 한다는 것이

왜 우는 소리로 잠을 깨우느냐는 철없는 소리와

 

안방 다락에 눈깔사탕과 사과가 있는데

그것은 내가 차지하여야 한다는 싸가지 없는 소리를 하니

그것을 들었던 할아버지는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한심한데

 

슬픔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고모로부터 죽음이란 곁을 떠나가는 것이라는 것만 들었으며

안방에 누워계시는 증조할머니의 퉁퉁 부은 흰 다리가 떠오르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먹을 것 주머니에 잔뜩 쑤셔 넣고 신이 났지 싶다

 

그리고 사체 앞에서는 무겁다 하면 더 무겁게 되고

냄새가 난다고 하면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기니

말을 조심하라는 말만 들었으며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피했지 싶어

 

누가 증손자를 애지중지하시고 먹을 것 잡숫지 않으시고

남겨서 가져다 먹이시려고 하시면 아무 소용없으니 사랑 쏟지 말라고

허튼 수고 하시지 말라고

뒤늦게라도 간곡하게 충언드리고 싶다

 

 

 

 

 

yellowday2013.12.10 18:52 

제이님 얘기로군요. 장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셨겠다싶습니다.
저도 외할머니께서 애지중지 키우셨지요. 제 남동생이 여년생으로 태어났기에~~
울 외할머니 중딩때 돌아 가셨는데 울음이 안나온걸로 기억을 하지요.
내리사랑이라고~~손주들한테 그 사랑 쏟으며~~~~~철이 늦게 들었으니~에구입니다.

 

사진은 오래전에 모셔왔는데 출처는 알 수 없답니다.
만약 저작권관계로 문제가 발생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보대로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많은 양은 아니라면서 1-3" 정도 내릴 거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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