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5

피난민/배 중진

배중진 2025. 9. 9. 23:11

피난민/배 중진

 

원래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여야 했다

갑자기 이웃사촌이 되어야 할 나라가 침공하여

살기 위하여 뿔뿔이 흩어진 불쌍한 시민들

생면부지인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나라는 없었다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고국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먼 장래를 위하여 자유와 평화의 씨앗을 심던 가련한 여인

허드렛일을 마다하고 불철주야 뛰어야만 했던 것은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신세였기 때문이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피자도 만들어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면서도

조금씩 늘어나는 통장의 잔액을 보면서 꿋꿋이 고통을 참았는데

잘못된 시간에 괴물과 부딪치면서 희생당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작은 기차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하필이면 백인을 증오하며 전과가 엄청나게 많은 흑인의 앞에 앉는

일생일대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 할 일만 몰두하고 있었다

 

움찔한 범죄자는 비겁한 살인마로 돌변하여

잔인하게 뒤쪽에서 갑자기 칼을 휘둘렀다

사람이 죽었지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무기를 들고

옆 칸으로 이동하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찍혔고

세상에 공포되었다

미국의 현실이 공개된 것이다

범죄와의 싸움이 전쟁터 못지않다는 것이다

 

가련한 여인을 누가 보살펴 줄 수 있었을까

친구와 친척들이 있는 아름다운 조국은 물론 아니었고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수호한다고 허풍 떠는 나라도 아니었으며

처참하게 당하여 홀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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