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3

안갯속/배 중진

배중진 2023. 1. 6. 02:49

안갯속/배 중진

 

감출 듯 자욱한 안개에 휩싸여

간신히 서 있는 외로운 나무 한 그루

주위에 있던 나무들 순식간에 싹둑 다 베어져 사라지고

사시나무 떨듯 존재를 무색게 했는데

 

기적같이 살아남았고 

귀한 까마귀 한 쌍 둥지를 틀게 하였구나

가까이에 까마귀가 자주 출몰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덮는 안개 때문에 이 지역에 살던 인디언들이 하얀 평원이라 명명했다는 동네

 

오늘도 배가 고픈 까마귀들 아우성쳤는데

오늘 이곳에 먹을 것이 있음을 기억한다고는 하지만 

오늘, 내일을 따지기 전에 누군가 날아가다가 먹이를 보았지 싶고

오늘이 다 가기 전에 그것을 서로 나눠 먹는 것이 아니겠나 옹졸한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앙상한 나뭇가지뿐이라 

보금자리를 떠난 까마귀마저도 찾지 않지만

여름이 되면 제 고향을 잊지 못하고 찾아와

무성한 잎 속에서 다음 세대를 창출하지 않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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