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1

씨돼지/배중진

배중진 2021. 1. 3. 15:20

씨돼지/배중진

 

원래는 선배였다

중학교 들어갈 때 아마도 옆방에서

6학년 과정을 동급생들과 같이 또 공부했지 싶기도 했는데

까마득히 몰랐고

중학교도 달랐다

농촌인지라 같은 기차역을 이용했어도 방면은 영 달랐다

 

1,600여 명의 초등학교이지만

학교 근처에 사는 선배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었어도

그 집의 거대한 흰 돼지는 잘 안다

어쩌다가 다른 집의 돼지가 와서 흘레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씨돼지를 키우는 집이었다

 

깨끗한 한복을 입고 

곰방대 물고

회초리로 몰아 돼지를 교미시키며

금이빨의 치아를 드러내 히쭉 웃으시는 춘부장님 모습도 기억한다

일본식의 집에서 선배는 살고 있었고

논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우연히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 집에서 다른 친구들과 식사도 대접받았다

바둑도 두고 

건방진 친구들은 친구의 아버님 성함을

친구 부를 때 사용하기도 한다

'부영 형님의 자제 아니신지'

그러면서 놀리기도 한다

어영부영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하는데

부자

영자를 쓰고 계셨다

 

미국에 들어와 산다는 말은 들었는데

한 번도 전화 연락을 취하지 못해 죄스럽다

각종 구기 종목 운동을 프로선수 못지않게 하던 친구였는데 

건강은 하시겠지?

70년대 중반부터 만나지 못했으니 오랜 세월이 흘렀고

연말연시가 되니 더욱 간절히 생각이 난다

 

결혼하고도 자식이 없다는 소식을 들어

엉뚱하게도 종돈이 생각났다

 

지금 만난다면 아마도 춘부장님의 얼굴을 뵙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The 173rd Dutchess County Fair 8/21/2018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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