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0

면죄부/배 중진

배중진 2020. 12. 30. 22:57

면죄부/배 중진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어머니를 망치로 잔인하게 내리쳤다

그리곤 친구들과 마약을 하고 카니발에 가서 흥청망청 쏘다니다가

4시간 만에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다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아 일하시는 상점에 전화했더니 아무도 받지 않았고

걱정되어 상점에 가봤더니 바닥에 누워 계셨단다

 

1986년도 경이니

과학적인 수사에 한계가 있었고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피의자는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지만

인간인지라

죄를 짓고 여분으로 사는 삶이어서인지는 모르되

결혼했어도

마약에 찌들어 살고

큰 사건으로 감방을 들락날락한 것은 아니지만

삶이 여의치 않아 이혼당하고 혼자 사는데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과학은 발달해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어헤치고

의학은 연구 끝에 궁금한 인체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20년이 지났어도 현장에서 채취한 물증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어

범인은 거짓말로 위기를 넘겼어도 명명백백하게 탄로 나더라

 

그 오랜 세월 인간답게 살지도 못하고

마약과 술로 과거의 한순간을 잊으려 했지만

수많은 이목이 두렵고 어찌 피할 수 있으랴

 

당신이 깨끗한 사람이라면

두 발 쭉 뻗고 편히 잠잘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제 누가 당신의 대문을 두드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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