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공포/배중진
솔직히 말해서 난 어렸을때
안방에서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사랑방으로 건너가기가 그렇게 무서웠다
모두들 겁쟁이라고 한다
부엌이 보였고 샘으로 가는 길을 거너서
산더미처럼 짚이 쌓인 나뭇간을 지나
소가 씩씩거리며 움직이는 외양간과
광으로 통하는 길은 낮에도 가기를 두려워 했다
특히나 겨울에 심했는데
안방에서 사랑방에 계시는 할아버지를
고래 고래 고함쳐 불을 키고 문을 열어 놓게 한 뒤
총알같이 튀어서 사랑방에 도착 안방에 불을 끄라고 고함을 치곤 했다
그런 밤엔 악몽을 꾸곤 하는데
부엌문, 대문, 광문, 심지어는 소마저
소리를 내곤하여 아예 이불속으로 머리를 감춘다
무서운 소리가 어느덧 쌔근쌔근 숨소리로 변하여
잘잤는가 싶으면 천장에서는 쥐들이 운동회를 벌이고
밖에서는 또한 휘날리는 낙엽을 따라
도둑놈이 가면을 쓰고 문풍지에 침을 발라 호시탐탐 노릴 것 같았다
부엉이는 둥구나무 높은 곳에서 망을 보며 부엉부엉 울고 말이다
기침도 못하고 두려움에 죽은 듯이 눈만 똘망거릴 때
병적인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는 수호신 같이 들렸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안심이 되면서
혼수상태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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