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할머니의 허리/배 중진

배중진 2018. 12. 6. 03:17

할머니의 허리/배 중진


작은 우리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러져 더 볼품없어 보이신다
그렇다고 불평불만 한마디도 하시지 않으셔
우린 으레 할머니는 구부러진 허리로
허리가 끊어지시도록 일만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가끔 피시면서 아프시다고 하실 때까지는


사연을 알고 나면 더욱더 엄청난 것이
사변 때 빨갱이 앞잡이들한테
무지막지하게 얻어터지셔 그렇게 되셨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면장이셨던 할아버지를 때려죽이려고 들이닥친
무식하고 어리석은 놈들이 몰아붙이며
대신 반죽음을 만들어 놓고
집에서 쫓아낸 것이다


원수진 사람들이 없었고
적의를 품을 수도 없는 것이
남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시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웃으시기에
척질 일이 있을 리가 만무했건만


이슬비가 내리던 날
농사 거리도 많으신데
그 와중에 꽃모종을 이식하는 것을 보았다
둘러보니 꽃밭이 있었다
항상 그곳이 꽃밭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농사일을 남들에게 다 주었을 때는
한가하시니 일을 만들어서 하셨다
꽃밭은 점점 넓어져만 갔고
마당에서도 꽃이 폈다
콩과 보릿단 등이 널렸던 곳이
화단으로 변해 할머니의 마음을 펼쳤다


할머니는 떠나가셨어도
꽃을 보면 할머니의 사랑이 영원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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