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배 중진
둥구나무 아래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이시는
시원한 곳
장정들은 논에 나가
뜨거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엎드려 땀을 비 오듯 쏟아내도
드러누워
시조 한가락씩 뽑아내시는 곳
곰방대 무시고
물끄러미 살아온 세월
연기처럼 내뿜었다가
주마등처럼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시기도 하는 곳
애송이 하나가
본 것은 있어
굵은 느티나무에 올라가려고 끙끙댄다
올라가는 방법은 많지 싶은데
손이 닿는 곳마다 그 누군가에 의해
소똥이 처덕처덕 처발라져
감히 올라갈 수 없기에
애를 쓰느라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올라가는 것은 어떻게 하다 보니
작은 키를 넘어선 만큼의 높이인데
내려가려니 발이 닿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와달라고 소리칠 용기도 없고
순수하게 항복하려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분명 정상에 오르는 것은 선택이었지만
겁내지 않을 정도의 담을 키워내야 했고
내려가는 것은 필수였으며
방법이 필요했고
엄마 앞에서의 무용담은
소똥 냄새로 무용지물이 되었더라
정말 자랑하고 싶었는데
지금도 기억하는 파수꾼, 정자나무 밑은
시원하기는커녕 땀이 삐질 거리며 나오는 곳이요
겁쟁이라고 누가 놀릴까 봐 두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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