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속수무책/배 중진

배중진 2018. 7. 3. 01:34

속수무책/배 중진


날씨가 개떡 같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지만

정상에는 시원하게 펼쳐진 바윗덩어리가 있어

마을을 일목요연하게 내려다볼 수도 있다하여

늦은 시간 아무도 찾지 않는 야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낯선 지방이라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높지 않기에

단숨에 오를 수 있다는 느낌이었고

숲속에 숨어 때를 기다리는 모기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았다


구부러진 길

펼치면 정상이겠거니 희망을 품어보지만

또 완만하게 접혀있길 수십 차례


그렇게 많았던 나무들 다 사라지고

바위만 깔린 곳

거짓말같이 조금 전까지 돌아다녔던 시가지가 바로 아래로 보이는 곳

오래전에 내렸던 비가 아직도 고인 곳이 많았으며

울퉁불퉁하니 환영하는 눈치는 아니었기에

더 험상궂은 모습 보기 싫어

서둘러 내려오는데


숲속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요란을 떨어

서둘렀지만


몇 걸음 딛기도 전에

나무 밑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목을 움츠리고

몸을 최소한도로 줄였어도

금세 젖어 들어

나무 밑이나

빗속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허탈한 모습으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다 맞으며

털털 내려왔다


참 오래간만이었고

무방비상태로 쫄딱 맞았다

가진 것이 있어도

가진 것이 없었던 우중충한 날이었다


너무 얕보아

준비를 덜 한 사람에게 내린

가혹한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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