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분위기의 초원/배 중진
평화로운 초원에
사슴 등 초식동물들이
순진무구하게
아무 의심스러운 눈치도 못 채고
파리와 모기만을 의식하며
맛있게 풀을 뜯고 있다
가까이에 야수가 도사리고 있음을
전혀 낌새채지 못하고
끼리끼리 쫓고 쫓기며 장난질도 친다
배가 고픈 짐승은 호시탐탐 눈이 벌겋고
소리 나지 않게 포복하는 것에 익숙했으며
도망갈 방향까지 이미 감지하고 있는 듯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는
벼락같이 덮쳐
단숨에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불쌍하고 약한 동물은 뜯던 풀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발버둥 치며 허공을 바라보고
고통도 순간
축 늘어져
이제까지의 삶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백지장처럼 매우 얇았고
아픔이 없어 흐느적거리는 가랑이를 넓게 벌려놓곤
동정하듯 핥아주기라도 하는지
정성 들여 깨끗하게 해주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어 사타구니부터 먹어치운다
볼록하고 탱탱한 뱃가죽을 으스대며
핏빛의 주둥이로 어깃장을 놓는다
남의 죽음에 대하여 하등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동안 평화 아닌 평화가 엄습하는 침묵의 초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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