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낙서/배 중진

배중진 2018. 3. 1. 02:05

낙서/배 중진


남루한 차림의 앳된 흑인 소년이 

양지쪽에 너부죽이 앉아

세상사에 관심은 없는지

초점을 잃고

잘려나간 두 다리의 끝을 따라가다가

멍한 모습으로

아무 뜻도 없이 막대기로 낙서하는가 싶었는데


무의식적으로도

지뢰를 밟아 사라진 두 다리가

꿈에도 사무쳤던 모양이다


그 시간이 악몽이었고

바로 그 처참한 순간의 1초 전으로 돌아갔으면 싶었겠지


끊어진 곳부터

발바닥까지

낙서는 이어져

쩍 벌려 달리는 모습이었고

그리곤 희쭉 웃는다


비록 신발 없는 맨발이었지만

넓은 평원을 마냥 뛰놀고 싶었으리라


해맑은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시무룩한 아이


감히 그 누가 있어 

저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

'詩 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풍/배 중진  (0) 2018.03.03
사필귀정/배 중진  (0) 2018.03.03
소란/배 중진  (0) 2018.03.01
봄이 오는 길목에서/배 중진  (0) 2018.02.28
이런 세상이 싫다/배 중진  (0) 2018.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