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배 중진
남루한 차림의 앳된 흑인 소년이
양지쪽에 너부죽이 앉아
세상사에 관심은 없는지
초점을 잃고
잘려나간 두 다리의 끝을 따라가다가
멍한 모습으로
아무 뜻도 없이 막대기로 낙서하는가 싶었는데
무의식적으로도
지뢰를 밟아 사라진 두 다리가
꿈에도 사무쳤던 모양이다
그 시간이 악몽이었고
바로 그 처참한 순간의 1초 전으로 돌아갔으면 싶었겠지
끊어진 곳부터
발바닥까지
낙서는 이어져
쩍 벌려 달리는 모습이었고
그리곤 희쭉 웃는다
비록 신발 없는 맨발이었지만
넓은 평원을 마냥 뛰놀고 싶었으리라
해맑은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시무룩한 아이
감히 그 누가 있어
저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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