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8

주사위는 던져졌고/배 중진

배중진 2018. 1. 25. 11:56

주사위는 던져졌고/배 중진


사랑하는 사람이 머리가 길다고 잔소리를 하나

머리를 짧게 깎을 때마다 감기 기운이 스며들어

겨울엔 가능하면 길도록 내버려 두는데 


자신이 생각해도 길어 보기 싫고

관리하기도 어려웠으나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는 기간이 길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영상으로 올라가자마자

득달같이 이발소에 찾아가 

그야말로 지독하게 원수갚듯 짧게 깎았더니


생각지도 않은 순순한 복종에

승리감에 도취하여

휘파람 불며 요모조모 따지듯 살피고

백내장 수술 후 더 좋아진 시력으로

짧은 것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검은 점이 있단다


60년 이상 매일 바라보며 관심을 가졌던 얼굴과 

이마 위라 잘 보이지 않던 곳이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그리고 군대 시절엔 까까머리였었는데

그런 큰 흉한 부분이 있다면

아무리 모를까


이상하다 싶어

화장실로 달려가

또 다른 거울을 들고

샅샅이 살폈더니

뭔가 검은 것이 보여

궁금하기도 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긴급히 의사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마침 한 사람이 예약을 취소해

30분 만에 올 수 있느냐 하기에

잠시 망설였지만

다음 기회는 4월에나 있다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는 

샤워 간단하게 하고 달려가

검사받고

사진 찍고

부분 마취하고 조직을 떼

생체 조직 검사까지 받았다


별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평범한 날에

일사천리로 기적 같은 일이 행해져 망연했으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바둑을 두고 계가를 하듯

조용했던 순간부터 시작하여


꺼리는 일을 날씨가 좋아 짧게 깎았기에

보이지 않던 곳이 노출되었고


노안으로 어둡던 눈이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였기에

훤히 볼 수 있어 

나쁠 수도 있었던 곳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다행이면 다행이고

불행이면 불행이어도

조기에 발견했으니 좋은 일이 아닐까

그래도 내일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