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1

무당거미/배중진

배중진 2011. 12. 19. 09:04

무당거미/배중진

세 마리의 거미가 보였고
각자 요긴한 자리에서 요지부동인데
이들은 게으르기 짝이 없고
둔하기도 남 못지않았는데

눈이 오기도 전에 한 마리는 보이지 않았고
그 힘없이 날리던 눈이 거미줄에 걸리자
다른 하나도 조용히 사라졌는데
눈과 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곳의 거미는

영하의 추운 날씨인데도
뭘 믿고서 매달려 있는지 호기심이 발동하여
살며시 찾아가 거미줄을 건드렸지만
움직이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몇 번 더 줄을 건드렸더니
턱걸이하듯 간신히 한 손으로 매달리다가
맥없이 떨어져 배가 터져 죽었는데
빌어도 소용없었고 눈이 뭔지 겨울이 뭔지

허술한 집을 지어놓고 바람만 피하다
곤충들이 실수로 걸리기만 기다리더니
엄동설한 제집 돌보지도 않고
욕심만 차리다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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