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1

거미/배중진

배중진 2011. 11. 28. 22:55

거미/배중진

날씨가 추운데도 거미는 길목을 지키고
죽은 듯이 온종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데
운수가 좋은지 아니면 미물들이 욕심이 과했는지
흔적을 보아서는 배고프지는 않겠다 싶었고

큰 벌이 처마에서 떨어져 빌빌거리더니
나중에 보니 무슨 이유인지 죽어 있어서
이왕지사 죽은 목숨 거미한테 주었더니
바로 달려와서 건드려 보긴 했는데

덩치가 너무 커서인지 아니면 죽었음을 아는지
줄을 하나씩 다 풀어서 밑으로 떨어뜨리니
보시하도록 했다는 자긍심이
여지없이 자괴지심으로 변하여 씁쓸했고

저런 곤충도 가리는 것이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물불 가리지도 못하고
덥석 물어서 나중에 문제가 되어 구설에 오르니
세상에 힘들이지 않고 얻는 것은 조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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