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1

오토바이/배중진

배중진 2011. 11. 28. 22:52

오토바이/배중진

가친께서 치통이 있으시고 어깨가 좋지 않다고 하시더니
조치원에 나가서 치료와 물리치료를 받고 오시겠단다
미국 같으면 반드시 예약을 먼저 하셔야 되지만
한국은 아무 때나 가서 좀 기다리시면 된다는데

같이 가시렵니까 여쭈우니 혼자도 괜찮다고 하시고
마을 앞으로 아침에 지나가는 버스가 있고
오후에 들어오는 버스를 이용하시려는 듯
단정하게 차려 입으시고 지팡이를 들고 나가시는 모습은

옛날 바람같이 다니셨던 생각만 하여서 쓸쓸하게 보이셨고
연세가 드셔 몸은 자꾸 괴롭게 아파오니 말씀을 하시지 않으면
자식들이 한다고 해도 어이 보살펴 드리겠는지요
청주에 있는 매제가 오늘 들린다고 했기에

전화해서 몇 시에 들릴 수 있는지 물었더니
오후 4시에나 잠깐 들릴 수 있다니
아무리 물리치료를 오래 받는다고 가정하여도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때 모시고 오기는 틀렸는데

점심 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마을 앞에서 내리시지 않았고 노선이 다른 버스를 이용하셨단다
남아 있는 수단이 오토바이인데 거기까지 끌고 가야하니
전에 타 본 경험은 있지만 최근 자전거도 타지 않았기에


받침대를 푸는 것부터 헤매다가 간신히 시동을 걸고
그렇게 배우라고 하셨는데도 거부했었는데
이런 긴급상황이 발생하니 어쩌겠는가
한참 뜯어 보다가 브레이크만 염두에 두고 달리다 서다

저 먼 곳에서 꼬부라져 오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란 말인가
작아도 너무 작았고 도무지 믿기 힘들은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많이 걷지는 않으셔 다행이었고 어설프나마 도움이 되었으며
연세 높으신 아버지 허리를 한 손으로 잡고 지팡이를 들었지만 포근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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