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0

단발머리/배중진

배중진 2011. 3. 13. 01:19

단발머리/배중진

어느날 갑자기 개울가에서 만난 소녀는 단발머리였다
친구의 친척인데 서울에서 방학을 이용해서 이곳까지
예쁘고 하이얀 얼굴에 가끔가다 미소를 지을때
고연히 가슴이 뛰던 그 더벅머리 소년이 하루는 용기를 내서

친절을 베푼다고 원치않는 것을 거들다가
쌀쌀한 한마디에 서럽게 정이 뚝 떨어지고
더 이상 그 소녀에게 다가가지 않게 되었었지
그런 그녀는 아랑곳 하지도 않고 지멋에 잘 놀더군

호박의 잎을 따다가 흐르는 물을 막았고
그리곤 줄기의 대롱으로 물을 돌려서 물레방아를 만들었더니
어느사이 다가와 지것인양 가지고 놀아도 촌놈은 말도 못하고
그녀의 좋아하는 모습만 훔쳐 보았었던 거야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보이지가 않았고
친구에게 그녀의 행방을 묻곤 또 묻고
말없이 떠난 그 단발머리 소녀
아직도 소년의 가슴에 살아 전해 온다네

호박도 꽃이냐고 친구들이 농담을 걸어와도
진지하게 대답하는 더벅머리 소년은
화사한 호박꽃이 입을 쩍 벌리고 벌꿀을 품을때
알지 못하는 희열을 느끼곤 했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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