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1

양잿물/배 중진

배중진 2021. 4. 27. 11:51

양잿물/배 중진

 

구정물 통엔 항상 구정물이 있었다
소와 돼지를 키우고 있었기에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항상 아끼고 절약하는 정신이 아들을 살렸다

왜, 혼자 놀고 있었던가
사랑방도 아니고 
건넌방의 솥에다 흰 빨래를 삶고 있었던 것은
마당에 구리 선으로 된 빨랫줄이 길게 나 있기 때문이리

박하사탕을 증조할머니가 땟자국이 낀 주머니에서 
종이에 싸 애지중지 아끼셨다 사랑하는 증손자에게 자주 주셨기에
하얀색의 박하사탕을 잘 알고 있었는데
어럽쇼, 대문을 막 나서려다 부뚜막에 있는 것을 보았고
누가 볼세라 순식간에 입안에 넣었는데
전에 먹던 것과 맛이 전혀 다르고 입안이 뜨거웠다

 

원래 꿀꺽 삼키는 박하사탕이 아니었으니 망정이고
삼킬 성질의 맛도 아니기에
입을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 순간에 아랫동네에서 놀다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던
사촌, 육촌 형의 눈에 띈 것이고
한바탕 소리 지르고 비명 지르면서 소란을 피운 뒤
구절 물통으로 끌려가 구정물을 바가지로 들이키게 된 것이다
소와 돼지가 먹는 것이지만 사람이 먹었어도 살아남았다

삼키지 않았다는 것
친척의 눈에 바로 발각되었다는 것
구정물이 있었다는 것
구정물이 도움이 되는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입안을 헹궜다는 편이 나았으리

그 이후 박하사탕을 먹어본 적이 없다
60여 년이 지났어도

 

영어 발음이 안 되는 것을 그때의 양잿물 탓으로 돌리며 산다

 

  • 배중진2021.04.27 11:53
    사람 잡겠네/배중진

    그러니까 아주 어렸을 때
    건넛방 부엌 솥에다가
    하얀 옷을 삶는데
    사람은 없고 양잿물만 있더라 이거지

    박하사탕을 아는 녀석이 하얀 것을
    남 볼세라 입안에 집어 넣었으니
    그것을 어찌 삼키겠는가
    으~하면서 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배우고 있던 사촌, 육촌형들이
    그 순간을 목격하고 난리가 났는데
    그 이후 먹을 것이 있어도
    건드리지 않았고 항상 조심했는데

    냉장고를 여니 음식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아버지 진지상을 올려드리나
    이거 잘못하다간 옛일이 될 수 있음이여

    -11/1/2011-
  • 배중진2021.04.30 00:02

    9/22/2016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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