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0

매미의 운명/배 중진

배중진 2020. 9. 21. 01:21

매미의 운명/배 중진

 

7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매미의 노랫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의 동정을 살폈다

귀를 크게 열어 놓았다

 

그러길 며칠

매우 약한 소리가 잠깐 들리는듯하기에

신경을 곤두세워 간신히 잡았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 나무의 둥치는 

보름도 채 되지 않아 

강하고도 몹쓸 바람에 뒤틀리면서 쓰러졌다

 

매미는 숨어 지내던 나무의 운명을 알았을까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사랑과 감사함으로 보듬어 주지도 못했는데

큰 공터로 남게 되었는지

그 지역을 떠나야만 했는지를

 

모두 숨어서 지냈던 여름

같은 인간끼리 만나는 것을 꺼리던 시절

 

오랫동안 암흑에서 지냈던 매미들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함을 알았는지

밝은 세상으로 나오기를 주저하더니

사회적 거리를 두는 듯하더니

아예 크게 노랫소리 세상에 떨치지도 못하고

온 데 간 데 예고도 없이 사그라졌다

 

모든 것이 빈 곳으로 변했고

여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을씨년스럽고 썰렁하다

 

7/18/2020 매미 등장.
8/04/2020 강풍에 거목 쓰러짐.
8/06/2020 나무의 흔적 나이테만 남기고 사라짐.

 

온 데 간 데 예고도 없이
온데간데없이

 

9/20/2015
세종시
이모님 댁
외갓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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