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20

인사불성/배 중진

배중진 2020. 8. 30. 08:35

인사불성/배 중진

 

검은 봉지엔 술병이 숨겨 있으리

담벼락에 의지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비스듬히 꼬꾸라져 꼼짝을 하지 않는다

구석진 주차장이었고 토요일이라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보곤 혀를 차며 사라진다

 

인간이 인사불성이 되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바쁜 척들 한다

 

신고를 할까 말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 했겠지만

 

저 사람도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태어났을 테고

한 가정의 책임 있는 아빠일지도 모른다

어딘가에 무척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뭔가에 불만이 잔뜩 쌓여 비탄에 젖었는가

사랑의 공든 탑이 무너졌던가

사업에 실패했는가

 

의지할 것이 없어

마약의 유혹에 넘어갔나

술독에 빠졌는가

 

죽은 듯이 잠을 자는데

급기야는 구급차가 달려오고

경찰차가 아무렇게나 주차하고

소방차가 조용했던 곳을 가득 채웠다

그리곤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남은 것은 경찰이 발로 건드려본 검은 봉지에 담긴 술병과 

지저분한 소지품들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불쌍한 영혼

깨어나 정신을 차린 뒤

과연 새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비가 쏟아지는 데도 정신없이 잠을 잤던 사람인데

 

더 좋은 내일이 그에게도 살짝 다가왔으면

따스한 가정이 환대하는 곳으로 돌아갔으면

 

4/23/2019 청남대 방문.

 

Pope Julio II
Pope Julius II

 

Julio!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이 대뜸 이름을 부르면서 오는 것을 들었답니다.
아마도 저 사람의 이름이 훌리오이고 이 근처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가 봅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경찰만이 알고 있다는 것에
그의 비애가 서려 있지 싶더군요. 훌리오가 건강한 삶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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