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2

침소봉대/배 중진

배중진 2012. 11. 30. 09:46

침소봉대/배 중진

 

국민학교 1학년 때

이웃집의 세 아이와 집으로 향하는 길은

불행하게도 그 아이의 집 앞을 지나야만 했는데

그는 떡 버티고 서서 길을 막았으며

 

겁먹은 여자아이에게 가방 셋을 맡기고

우린 1:3으로 붙었는데 만만치 않았고

급기야 우리가 밀려서 도망을 쳐야만 했으며

그 아이는 성질을 못 이겨 가방을 뺏으려 했고

 

우리의 의리 꽃순이는 저항하며 가방을 지켰고 

무지막지한 그 아이는 느닷없이 소녀의 아랫배를 걷어찼는데 

어르신들은 모르시지만 맹장이 터져 입원하지 않았었는지

그 후 예쁜 아이는 얼마간 볼 수 없었으며

 

세월은 흘러

국민학교 5학년 때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이젠 혼자서도 그 아이를 혼내줄 수 있는 덩치가 되었고

 

무슨 일로 그 아이는 까불거리며 도망치고 있었고

쫓아가면 또 도망을 갔는데

공교롭게도 책 보따리가 놓여있는 곳과는 반대인

고향마을까지 오게 되었으며 그런가 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그 아이의 어머니가 졸졸 학교 근처까지 따라오시더니

문방구에서 뭣도 모르고 풍선을 고르고 있는데

나의 목덜미를 낚아채곤 고함을 지르시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조용하기만 했던 교무실로 끌고 가셨으며

침소봉대로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엉뚱한 말씀을 하시니

아무리 어른이시지만 억울하기만 했고 원통했으며

잘 아시는 담임선생님께서 달래시며 사건을 마무리 지으셨는데

 

곤욕을 치르신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그 일을 잊지 못하시는지 어느 날 잘 놀고 있는데

지나가시다 꿀밤을 주시며 너 때문에 개망신을 당하셨단다

잊을 수 없는 큰 사건이었지만 그 아이가 보고 싶은 지금

 

그는 오래전에 우리 곁을 떠나가서 존재치 않는다

그 친구가 어디까지 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무엇을 했으며

어디에서 살았고 무슨 사연으로 여자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결백을 주장하다가 분신자살을 시도했고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는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몇몇 다정한 친구들은 마지막 순간을 같이했었고

멀리 있는 친우에게 힘없이 떨리는 낮은 목소리로 비보를 전해주었을 때

제일 걸리는 것이 철모르던 시절 있었던 우리 사이의 악연이었는데

할 수 있다면 잘, 잘못을 따지기 전에 술 한잔 나누고 싶은 간절한 마음뿐이다

 

봄엔 능수버들이 푸름을 자랑하고
가을엔 아름다운 단풍이 물속에 비추니
늠름하고 웅장한 모습이 더욱 멋집니다.
멋진 구경 하셨고 즐거움이 가득하신
12월이 되시기 바랍니다.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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