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2010

까마귀들의 회의/배중진

배중진 2011. 3. 8. 04:33

까마귀들의 회의/배중진

날씨가 갑자기 찌는 듯 뜨거워졌다
여름이 마침내 물러가는 줄 모두가 알았고
깊은 옷장속에 있는 가을 옷들을
주섬주섬 내 놓았으며 실제로 입고 나다녔다

마치 개선장군이 득의양양하게 활보하듯이
시원한 거리를 활발하게 쏘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여름이 피시식 갔음에
싱거워 하며 결실의 계절을 흥겹게 노래했는데

매미의 노랫소리가 다시 들려오는가 싶더니
까마귀들이 그자리를 차지하곤 무슨 탁상회의를 하는지
언성이 높아졌고 하루종일 자리를 뜰 줄 몰랐으며
검은 그들 속을 어이 알리요마는 그들은 정말 듣기 싫었다

우린 발걸음 돌린 여름을 다시 살살 달래서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밀어 주느라 진땀을 뺏지만 버팅기는 힘이 보통을 넘었으며
짜증나게 하는 까마귀의 앓는 듯한 소리와 늦더위는 떠날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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